‘몸값도 떨어지고…’ 자산 디플레 이어 임금 디플레 현상

  • 입력 2009년 1월 4일 15시 17분


'자산 가치 떨어지고 이제 몸값도 떨어지고….'

경기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자산 가치가 폭락한 데 이어 임금도 낮아지고 있다. 일자리가 없다 보니 취업자들은 임금을 낮춰서라도 고용상태를 유지하려 들고 구직자들은 저임금을 받고서라도 취업하려는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다.

● 임금삭감, 무급휴가도 기꺼이

최근 D건설은 자사 직원들로부터 상여금과 임금 20% 삭감을 받아들이겠다는 동의서를 받았다. 동의서를 받기 시작한 지 3일 만에 전 직원이 자발적으로 서명을 마쳤다. 근로조건 변경은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개정하거나 근로자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D건설 직원 이 모(30·경기도 남양주시) 씨는 "지난해보다 올해 회사 사정이 더 나빠질 것이 분명하다"며 "구조조정을 하는 대신 임금을 낮춰서라도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별다른 반발이 없었다"고 회사 분위기를 전했다.

1월부터 4월까지 전 직원에게 2주간 강제 무급 휴가를 가도록 한 H반도체 회사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실질적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효과가 있지만 직원들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H회사 직원 최모(27·서울 광진구)씨는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이견 없이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며 "2001년 한 차례 구조조정을 겪었기 때문에 인력 감축보다는 무급 휴가를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휴가 중에도 회사에 나갈 예정이다.

● 구직자들 "임금 낮춰서라도 취업 먼저"

지난달 정부는 60세 이상의 고령근로자를 대상으로 본인이 동의할 경우 최저임금을 10% 낮추는 내용이 포함된 최저임금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러한 정부 방침에 대해 노동 단체들은 저임금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반발했지만 당사자인 노인 단체는 오히려 환영의 뜻을 표하고 나섰다.

대한은퇴자협회 주명룡 회장은 "최저임금 감액에 반대하는 단체들은 현장 상황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고령자들은 임금을 적게 받고서라도 재취업을 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같은 임금이라면 50~60대보다 젊은 층을 선호하므로 최저 임금 감액은 고령층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것. 대표적 생계형 일자리인 경비직 등 감시 단속직은 현재도 최저임금법 적용에 예외를 두고 있다.

주 회장은 "최저임금을 올리면 2005년 최저 임금 시행령 개정 당시 경비직마저 사라졌던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연령별, 지역별 차등 임금제'를 주장했다.

취업 전선에 뛰어 든 구직자들이 희망하는 연봉도 대폭 낮아졌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지난달 26~ 28일 입사 지원서에 희망 연봉을 제시한 경험이 있는 대학 졸업(예정) 구직자 10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지원서에 적어낸 희망 연봉은 평균 2437만원이었다. 이는 상반기 2617만원보다 180만원이나 줄어든 것이다.

또, 입사하려는 기업에서 희망 연봉보다 낮은 연봉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62.4%(630명)가 취업할 의향이 있다고 대답했다.

희망 연봉을 낮추기 시작한 시점으로는 10월 24.2%(90명), 11월 20.6%(77명), 12월 16.6%(64명) 순이어서 최근 3개월 이내에 대다수 구직자들이 희망 연봉을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심각해진 취업난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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