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75%, 청산가치>시가총액

  • 입력 2008년 10월 29일 03시 02분


■ 최근 증시 황당 사례들

올해 초 성과급으로 자사주 5억 원어치를 받은 대기업 임원 A 씨. 당시 주식 평가액을 기준으로 세금 1억6000여만 원을 내긴 했지만 ‘회사 경영을 잘하면 주가가 더 오르겠지’하는 마음에 속으론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9월 이후 세계 증시가 손을 쓸 수 없는 수준으로 폭락하자 그가 갖고 있던 주식의 가치도 올해 초의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현재 남은 주식의 평가액은 성과급을 받고 낸 세금보다 작아졌다.

A 씨는 “올해 초 성과급을 주식으로 받은 동료들 중에는 세금을 낼 돈이 부족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증시가 폭락하면서 주식에 얽힌 웃지 못할 사연도 늘어나고 있다.

○ 껌 값보다 싼 기업들 수두룩

개인 사업을 하는 정모(45) 씨는 2006년 그동안 모은 5억 원을 코스피 우량주 한 종목에 ‘다걸기(올인)’했다. 지난해 증시가 급등하면서 주식을 담보로 4억 원의 대출까지 받은 정 씨는 보유 주식의 평가액이 70억 원까지 치솟아 흐뭇해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증시가 폭락하면서 70억 원은 수억 원으로 쪼그라들었고 결국 정 씨는 담보 부족으로 30일까지 계좌에 증거금을 추가로 입금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주가가 떨어지면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밑도는 종목도 속출하고 있다. PBR는 시가총액을 자본총계로 나눈 값으로 PBR가 1배보다 낮다는 것은 지금 당장 기업을 청산하는 것이 오히려 주주에게 이익이 될 정도로 저평가됐다는 의미. 이론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28일 종가 기준으로 SK(0.47) 롯데쇼핑(0.49) 한진해운(0.46) 현대미포조선(0.51) 등 우량주를 포함해 코스피, 코스닥시장 상장종목의 75%가 PBR 1배를 밑돌고 있다.

주가가 껌 한 통 값보다 싼 종목도 적지 않다. 28일 종가 기준으로 남한제지의 주가는 70원이고 큐로컴도 70원, 팍스메듀는 80원, 온누리에어는 75원이다. 이 종목들은 5원만 움직여도 주가가 6∼7% 급등락을 반복한다. 주가가 500원 미만인 종목은 코스피시장이 61개이고, 코스닥시장은 198개에 달한다.

주가 폭락의 범위와 강도가 워낙 강해 우량주들도 단기간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다. 코스피시장에 상장된 930개 종목 중 최근 2주간 40% 이상 폭락한 종목이 234개(25.2%)에 이른다. 한화는 최근 2주간 59.03%나 폭락해 코스피시장에 상장된 930개 종목 중 하락률 10위에 올랐다. 한진중공업도 이 기간에 54.99% 폭락해 19위였다. 종목을 가리지 않고 폭락 장세가 이어지자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우량주나 잡주나 폭락하긴 매한가지”라는 말이 돈다.

○ 일본 주가는 1982년보다 낮은 수준

일본에서는 닛케이평균주가가 27일 26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최근 주가가 얼마나 ‘황당한’ 수준인지가 화제다.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 기업들의 주가도 엄청나게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도쿄(東京)주식시장 1부의 PBR는 1982년이 1.93배였던 데 비해 현재는 0.87로 1을 밑돌고 있다. 심지어 도요타자동차와 소니 같은 일본의 간판기업들조차 현재 주가가 청산가치에 못 미친다. 도요타자동차의 PBR는 0.85이고, 소니는 0.53이다. 다른 주요 기업의 PBR도 △닛산자동차 0.52 △도시바 0.95 △신일철 0.91 △히타치제작소 0.63 등으로 매우 낮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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