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금융위기설… “가능성 낮지만 說 자체가 위기 조장”

  • 입력 2008년 8월 6일 02시 59분


《채권시장 등 금융권 일각에서 ‘9월 위기설’이 번지고 있다. 9월에 6조 원이 넘는 외국인 보유 채권의 만기가 돌아오는데 이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금리와 환율이 급등하는 등 큰 충격이 올 것이라는 내용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한때 기승을 부린 괴담(怪談) 수준으로 터무니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위기설은 일부 인터넷 매체 등을 중심으로 수그러들지 않으며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5일에는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이 위기설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9월 만기 외국인이 보유한 채권은 대부분 국고채나 통안채로 안정적이며 대체 투자 대상이 마땅치 않다. 대규모 자금 이탈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답하며 차단에 나서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한승수 국무총리도 지난달 22일 국회 답변에서 “근거 없는 위기설은 우리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 외국인 보유 채권 9월에 만기 몰려

‘9월 위기설’은 외국인이 보유한 채권 만기가 9월에 몰려 있는 데서 시작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현재 외국인이 보유 중인 채권 46조7000억 원 가운데 연내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은 11조1000억 원 규모다. 이를 월별로 보면 8월 7000억 원, 9월 6조3000억 원, 10월 1조 원, 11월 1조7000억 원, 12월 1조4000억 원으로 9월에 유난히 만기가 몰려 있다.

위기설의 핵심은 외국인투자가들이 최근 국내 증권시장에서 주식을 대거 처분한 데 이어 채권시장에서도 9월에 만기 상환된 돈을 재투자하지 않고 빼 갈 것이란 주장이다.

이럴 경우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요가 크게 늘면서 국내 금융회사들의 달러 조달이 어려워지고 달러당 원화 환율이 급등(원화 가치는 하락)해 가뜩이나 불안한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상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대량 발행하면 채권 값이 떨어지고 금리가 올라가면서 가계와 중소기업의 대출금리 부담이 가중된다는 시나리오다.

○ “위기설은 전제부터 잘못”

정부 당국은 “위기설은 금융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 그대로 ‘설(說)’에 불과하다”는 판단이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위기설이 논의되려면 우선 외국인이 만기가 도래한 모든 채권에 대해 상환 요청을 하고 재투자를 하지 않아야 하는데, 한국의 채권시장을 대체할 마땅한 마켓이 없는 상황에서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이라고 말했다. 최 국장은 “설령 외국인들이 모두 털고 나간다 하더라도 이미 채권상환 자금을 마련해 문제 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송인창 재정부 국제금융과장은 “9월 만기인 채권 물량이 외국인 보유 채권을 포함해 19조 원가량인데 이를 일시에 재발행한다면 충격이 있겠지만 요즘은 재발행 시기를 분산해 두기 때문에 9월 예정 물량은 4조 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금리가 급등할 이유가 없다는 것.

외환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먼저 외환을 사고파는 매매시장과 관련해 외국인은 원화 채권을 살 때 팔았던 달러 금액만큼을 환위험 회피를 위해 선물(先物)환으로 미리 사뒀기 때문에 추가로 달러를 살 필요가 없고 환율에도 영향이 없다는 것.

외화를 빌려주는 대부시장에서는 빌려줄 달러가 일시적으로 부족할 수 있지만 이럴 경우 환차익을 노린 국내 외국계 은행들이 즉각 본점에서 돈을 빌려오기 때문에 외화 공급 부족이 거의 실시간으로 해결된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금융시장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국민은행 트레이딩부 노상칠 팀장은 “9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 규모가 이미 많이 줄어들었고 채권에 투자한 외국인들은 이미 환위험을 헤지(회피)한 상태라 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대증권 신동준 채권분석팀장은 “물론 경계하고 있긴 하지만 위기설 자체가 올해 초부터 나왔던 너무 오래된 얘기”라며 “간간이 은행 프라이빗뱅커(PB)들에게 채권 만기 도래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지만 당장 이 문제 때문에 시장이 크게 반응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 위기설 자체가 위기를 부른다

객관적 정황에도 불구하고 위기설이 수그러들지 않자 정부에서는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금감원 도보은 팀장은 “자기 충족적 예언처럼 위기설은 스스로 위기를 만드는 측면이 있다. 환율 상승, 주식시장 투자심리 악화 등 시장 불안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경제가 조금만 어려워도 위기설이 나온다. 한국 경제가 만날 위기를 반복해야 하는 수준인가. 좀 황당하다. 위기설로 시장이 출렁일 때 누가 이득을 보게 되는지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위기설이 글로벌 신용경색에 따른 국내 금융기관들의 달러 유동성에 대한 총체적인 우려 차원에서 나왔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외환은행 증권운용팀 남궁원 차장은 “위기설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외화유동성 문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등에 대한 우려가 합쳐져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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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위기설’ 지피는 또 다른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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