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이 무효…쇠고기 재협상 카드 꺼내나

  • 입력 2008년 6월 2일 21시 16분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정치권과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한미 쇠고기 재협상 여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재협상은 없다"고 못 박고 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가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불신을 넘어 반정부 시위로 치닫고 있어 정부와 여당의 정치적 부담이 커져가고 있다.

미국 측도 한국내의 여론 악화가 미국산 쇠고기 판매는 물론 한미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재협상 카드'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30개월 이상 쇠고기'와 '검역주권 확보'가 논란 대상

정부와 미국 측은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을 들어 쇠고기는 월령에 관계없이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을 제외하면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뤼크 앙고 OIE 사무차장도 최근 "SRM과 접촉하지 않은 부분은 30개월 미만이든 30개월 이상이든 위험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감염된 소의 살코기만 먹은 경우 인간이 감염됐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야당과 시민단체는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전면 수입 금지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할 수 있는 이른바 '검역 주권'의 확보를 요구하며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30개월 이상 소에서 광우병이 발병한 사례가 많은데다, 도축·유통 과정에서 이 고기에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야권도 국가 간 협상 결과를 무조건 뒤집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재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상황'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야3당이 30개월령 이상 쇠고기의 수입을 금지하는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한나라당이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같은 전략 때문으로 풀이된다.

개정안이 발효되면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장관고시와 충돌할 수밖에 없어 필연적으로 재협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정안을 행정부가 아닌 입법부가 발의해 통과시킨다는 점에서 협상 파기에 따른 정부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계산도 깔고 있다.

하지만 국회 통과를 위해 한나라당이 협조하면 미국이 '청와대가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책임론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대만 일본 협상결과나 정치적 타협이 재협상 변수

정부는 "국가간 신뢰에 따라 재협상은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재협상 가능성 자체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달 한미 쇠고기협상 추가협의 결과에 대한 브리핑에서 "새로운 과학적인 발견이 있거나 OIE에서 특별한 다른 결정이 있는 경우, 미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하는 협정에서 우리와 크게 다른 부분이 있는 등의 사정 변경이 생기면 재협상의 계기가 된다"고 밝혔다.

OIE가 지난해 5월 미국에 대해 광우병위험통제국 지위를 부여했는데, 이 지위가 달라지거나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이 과학적으로 입증된다면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 당장 협상 결과를 뒤집을 만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재협상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이보다는 미국이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인 대만 일본과의 쇠고기 위생검역 협상에서 한국에 비해 완화된 조건을 수용했을 경우 재협상을 요구하는 방안이 훨씬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치적 타협도 방법이다. 한 정부 당국자는 "법리적 해석보다 한미 양국의 대승적 관계에서 정치적 타협을 할 경우 재협상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측의 반대급부 요구도 변수

미국입장에서 '실리'로만 보면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비중이 큰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쇠고기의 85%가 30개월 미만 소에서 나온다. 또 이번 협상에 따라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수입되더라도 전체의 5%가 넘지 않을 전망이라는 것이 정부의 분석이다. 2003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 8400억원을 기준으로 따지면 420억 원밖에 되지 않는 시장이다.

금액으로 보자면 반대급부 제공을 통해 설득할 수 있는 금액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측이 '자국 국민들이 먹는 것과 똑 같은' 쇠고기의 수출 금지 조항을 받아들일지는 그 다음 문제다. 특히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허용한 월령 기준을 양보할 경우 대만 일본과도 쇠고기 위생검역 협상에서 선례가 될 수도 있다.

한국 정부의 재협상 요구를 미국 측이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이에 상응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자동차 분야 재협상 등의 반대급부를 미국 측이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한·미 자동차 교역은 불공정하다"며 한미 FTA 반대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측은 "한국의 재협상 요구를 받은 적도 없고, 국제기준에 따라 이뤄진 협상으로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재협상을 공식 요구해오면 검토는 하겠지만 국제 기준에 따른 것이므로 현행 협상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한 정부 당국자는 "미국 행정부와 정치권이 축산농가의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급박한 상황의 변화없이 쇠고기 재협상을 받아들이고 자동차 등 다른 이슈를 반대급부를 요구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박용기자 parky@donga.com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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