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형제 모은 5억도, 10년 장만 노후자금도 허공에

  • 입력 2008년 5월 30일 02시 58분


《“대체에너지 사업을 하는 게 확실하다고 믿었어요. 4형제가 함께 투자했다가 모두 5억 원이 날아갔습니다.” 투자자 A 씨는 주가조작 혐의로 최근 구속된 정국교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가 대표를 지냈던 코스닥기업 H&T에 투자했다 피해를 본 사람 중 한 명이다. A 씨는 가게를 판 돈 2억5000만 원을 지난해 9월 H&T에 투자했지만 이 돈은 3개월여 만에 2000만 원으로 줄었다. 1년간 돈을 불려 새 가게를 차리려던 A 씨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A 씨는 “확실한 투자 기회라고 생각해 형제 3명에게도 권유했다”며 “형제들도 많은 돈을 날렸지만 내가 자살할까 봐 오히려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A 씨를 포함해 H&T 주가조작 사건으로 손해를 본 사람들은 대규모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


“해외광산 개발” 공시에 주가 5000원대 → 8만원대

200명이상 소송 참여… 손배청구액 300억 이를수도

○ 정 당선자 등 보유주식 처분 440억 챙겨

H&T는 지난해 4월 우즈베키스탄에서 규소(태양전지 원료)광산 독점개발권을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당시 5000원대였던 이 회사 주가는 지난해 10월 8만 원대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회사가 11월 초 독점개발권 관련 양해각서(MOU)가 취소됐다는 공시를 하면서 주가가 곤두박질하기 시작해 12월 초 6000원대까지 추락했으며 현재는 4000원대다.

검찰에 따르면 정 당선자와 이 회사 임원 등은 지난해 10월 보유한 주식을 처분해 440억 원가량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H&T에 투자한 사람들은 막대한 손해를 보았다.

6000만 원을 잃은 투자자 B 씨는 “당시 대표이사였던 정 씨가 계약이 체결되면 1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이라며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는 것을 보고 미래 사업 가치가 높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B 씨는 “주가가 치솟자 정 씨가 먼저 ‘주가가 과도하게 올랐고 작전세력이 있는 것 같다’고 경고까지 하는 것을 보고 믿을 만한 경영자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농락당한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밖에도 피해자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에는 갖가지 피해 사례가 올라와 있다.

“노후 준비를 위해 10년 넘게 모은 돈을 이렇게 허망하게 날린 나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1억2000만 원을 다시 모으기에는 너무 지쳤습니다.”(자양동마담)

“주택구입자금을 대출받아 투자한 게 지금 1000만 원 남았습니다. 그냥 한강으로 가고 싶네요.”(수호천사262)

집단소송을 준비 중인 법무법인 한누리 김주영 변호사는 “지금까지 200명가량의 피해자를 확보했다”며 “이번 소송에는 최대 500여 명이 참여하고 손해배상청구액은 30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 “위험한 투자 안 하는 것이 최선”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증시 불공정거래 사례가 접수된 건수는 2005년 212건, 2006년 173건, 2007년 227건에 이른다.

주가조작에 따른 피해를 보상받으려면 집단소송에 나서야 한다. 주가조작이 일어난 기간에 해당 종목을 거래한 명세서를 준비한 후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한다는 위임계약서를 작성하면 된다. 하지만 집단소송은 당사자가 많아 소송관계가 복잡하고 재판비용도 증가하는 단점이 있다. 여기다 주가조작 관련 소송일 경우 조작 행위와 주가 변동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은 데다, 회사 측이 보상해 줄 자금이 없거나 주모자들이 도주하는 사례가 많아 보상을 받기가 만만찮다.

소송을 통해 보상을 받은 사례는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 영남제분 사건 등 손으로 꼽을 정도다. 소송 기간도 5, 6년 정도로 길다. 1998년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이 벌어진 후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것은 2004년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원개발, 바이오 사업, 엔터테인먼트 등을 사업 목적에 추가해 기업 가치가 올라갈 것처럼 포장하는 기업이 많지만 장밋빛 전망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른바 ‘유행 테마’에 편승하거나 소문을 믿고 투자하지 않는 것이 피해를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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