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판지업계 “우리도 등골 빠진다”

  • 입력 2008년 3월 27일 03시 01분




《‘이번에는 골판지 업계?’ 주물(鑄物) 업계와 레미콘 업계에 이어 골판지 업계도 원가 상승 부담으로 납품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의 재활용 폐지 수입 급증으로 국내 고지 원가가 치솟는 데 따른 것이다. 26일 한국골판지포장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27일 골판지 업계 사장들이 긴급비상대책회의를 열고 골판지 납품 중단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대표들이 상생(相生) 협력하기로 한 뒤 납품 중단에 들어갔던 상당수 중소기업이 생산 및 납품을 재개했지만, 골판지 업계는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을 감내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폐지가격 급상승에 물량 달려 원가부담 가중

업계 대표 오늘 긴급회의… 납품중단 등 논의

○ 급증하는 중국의 폐지 수요

26일 경기 오산시의 판지 원지(原紙) 제조업체 A사. 이 회사는 재활용 폐지로 원지를 만들어 판지(板紙) 제조업체에 납품한다.

이날 공장에선 평상시와 달리 나지막한 기계 소리만 들렸고, 직원들은 바닥 청소를 하고 있었다. 최근 폐지를 구하지 못해 한 달에 5, 6일씩 기계를 멈추고 있는 것이다.

A사 총무과장은 “1997년 외환위기 때는 팔 곳이 없어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원재료를 못 구해 며칠씩 기계를 돌리지 못한다”며 “가동을 완전히 중단하면 재가동할 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기계를 천천히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포장용 상자를 만들려면 ‘폐지→원지→판지→상자’의 순서를 거쳐야 한다.

폐지는 동네 고물상들이 모은 재활용 폐지를 압축해 만들어진다. 폐지의 약 94%는 국내에서 모은 폐지로 생산된다. 폐지 가격이 지난해 초 t당 6만∼7만 원 수준에서 최근 14만∼15만 원으로 급등했다.

골판지 업계는 폐지 가격 상승의 주된 이유가 중국 수출 물량의 증가라고 주장한다. 폐지 수출량은 2004년 1만8600t에서 지난해 30만5606t으로 급증했다. 국내 판매가격은 15만 원 수준이지만 중국에 수출하면 17만∼18만 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악화되는 도미노 피해

원지를 사들여 상자를 만드는 판지 업계는 상황이 더 나쁘다.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에서 원지를 가공해 기업 납품용 상자를 만드는 B사. 26일 기자가 찾았을 때 창고의 20% 정도에만 완제품 상자가 쌓여 있었다.

이 회사 공장장 B 씨는 “폐지 가격이 오르다 보니 원지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며 “지난해 초 t당 22만 원 하던 원지가 올해는 33만∼35만 원 수준이어서 자재 구입 부담이 너무 크다”고 털어놨다.

반면 대기업이 구매하는 상자 가격은 별로 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대기업과 상자 납품 계약을 1년 단위로 하기 때문에 재료 가격 인상분을 바로 반영할 수도 없다고 한다.

B 씨는 “최근 원지 업계가 t당 가격을 40만 원 이상으로 요구했다”며 “그렇게 되면 우리는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상자의 최종 수요자인 대기업도 할 말이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상자 값이 올랐기 때문에 제품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면서 “원가 상승분을 모두 소화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오산·안산=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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