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반란’

  • 입력 2008년 3월 13일 03시 07분


《국내 최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사법 처벌을 받은 대기업 오너의 경영 참여에 반기(反旗)를 들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12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주주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열어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과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14일과 21일에 각각 열리는 현대자동차와 두산인프라코어의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되는 것에 대해 반대의결권을 행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들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지분(현대차 4.56%, 두산인프라코어 2.92%)이

충분치 않아 경영진 교체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점점 커지고 있는 기관투자가의 목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기업 오너의 주주가치 훼손 적극감시 나서

국민연금, 지분 작아 경영진 교체는 어려울 듯

○ 사법처벌 오너 경영 참여 반대

정 회장은 2007년 분식회계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박 회장은 2006년 공금횡령 혐의로 각각 사법처리됐다가 이후에 사면 받아 현재 경영 일선에 복귀해 있다.

현행 국민연금법은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 지침을 통해 ‘기업가치의 훼손 내지 주주 권익 침해의 이력이 있는 자’에 대해 반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민연금 주주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주주 가치를 침해하는 경영자는 자격이 없다”며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주총에 참석해 반대 의견을 낸 경우는 2006년 70건, 지난해 93건 등으로 꽤 많지만 대기업 오너의 이사 선임을 반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기관 목소리 점점 커져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등기이사 선임이 무산될 가능성은 작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두산 측 우호지분이 51.31%에 달한다. 현대자동차는 우호지분 26.07%와 의결권 없는 자사주 5.04%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표 대결을 펼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이는 국내에도 ‘주주 행동주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연기금과 자산운용사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주주 행동주의의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은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일명 장하성 펀드). 저평가된 기업의 주식을 대량 매입하여 경영참여를 통해 기업가치를 올리는 방식의 투자를 한다.

국내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배당만 하고 투자에 나서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내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래에셋 주식운용팀 이정환 본부장은 “과도한 배당은 기업성장동력을 훼손하기 때문에 더 높은 가치를 지향하라는 의견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코스피시장에서 지난해 말 기준 기관투자가의 보유주식 평가금액은 59조9156억 원으로 전년 말보다 36.35% 증가했다. 특히 간접투자 문화가 확산되면서 자산운용사의 보유주식 평가금액은 19조9704억 원으로 전년 말(5조1291억 원)보다 무려 289.35% 늘었다.

○ 재계는 경계의 눈초리

증권업계는 기관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헤지펀드 같은 단기 세력이 회사를 괴롭히는 것은 기업에 해(害)가 되지만 국민연금 같은 장기 투자자가 의견을 내는 것은 주주가치를 높이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밝혔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캘퍼스)은 실적이 나쁜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사임을 요구할 정도로 선진국에서는 기관의 입김이 세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영 마뜩잖은 눈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정 회장의 등기 이사 선임은 책임경영을 구현해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두산그룹도 “박용성 회장은 이미 사면복권이 된 만큼 과거 일을 갖고 등기 이사 자격을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반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전무는 “한국적 현실에서 경영을 하다 보면 때로 사법적 다툼에 휘말릴 수 있는데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면 기업인들의 경영심리를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현대자동차 주가는 전날과 같은 6만7800원으로 보합세를 나타냈고 두산인프라코어는 전날보다 950원(3.26%) 오른 3만5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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