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稅차별 없애 국내기업 해외탈출 막아라”

  • 입력 2008년 3월 7일 02시 46분


외국인 투자기업 조세지원 왜 줄이나

《국내 전자회사인 A사는 최근 4년간 5억 원이 넘는 법인세를 냈다. 같은 기간 외국인 투자기업(외투기업)인 B사는 이익 규모가 비슷한데도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았다. 중국은 지난해까지 외국기업을 ‘모시는’ 나라였다. 자국 기업보다 10%포인트 낮은 법인세율을 매겼다. 올해부터는 외투기업 세율을 매년 1∼3%포인트씩 높이기로 했다. 기획재정부가 외투기업에 대한 조세 지원을 줄이기로 한 것은 대부분의 국가가 이처럼 세금을 통해 투자를 국내로 유인하는 정책을 줄이는 추세라는 점을 감안한 방향 전환이다. 외환위기 이후 외자(外資)가 필요해 지나치게 외국인에게 특혜를 제공하면서 그 부작용으로 국내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거나 경쟁력만 떨어졌다는 반성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 외투기업에 밀리는 국내기업

한국에 진출한 외투기업에 지원된 조세 감면액은 △2004년 4956억 원 △2005년 6662억 원 △2006년 4274억 원 △2007년 6337억 원이다. 해당 연도의 외국인 투자 규모에 따라 달랐다.

4년간 전체 감면액 가운데 첨단기술을 갖고 있거나 외국인 투자지역에 입주한 외투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액 비중이 전체의 75%를 차지했다. 과거 재정경제부의 외국인투자위원회 심의 결과 국내에 없다고 인정받은 고도의 기술을 보유했거나 경북 구미, 충북 오송 등 외투지역에 입주한 외투기업들이 법인세 감면 혜택을 주로 받은 것이다.

반면 국내기업은 외투지역에 입주하기도 어렵지만 정작 들어가도 법인세 감면은 못 받는다.

첨단기술을 가진 기업이 외투지역에 입주해 기술을 이전하거나 고용을 창출하는 긍정적 효과가 없진 않았지만 국내 동종기업이 상대적으로 외투기업과의 가격경쟁에서 뒤지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양금승 전국경제인연합회 규제개혁팀장은 “역차별적 제도가 많을수록 해외로 빠져나가는 기업이 늘어 일자리가 줄게 된다”고 지적했다.

○ 역차별 먼저 없앤 경쟁국

중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주변국들은 외국인에게만 적용하는 감면제도를 축소하거나 없애는 추세다. 그 대신 법인세율을 대폭 낮춰 자국 기업과 외투기업에 동시에 적용하고 있다. 국적에 관계없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은 개방정책이 시작된 1979년부터 지난해까지 외투기업에 자국기업보다 더 유리한 세율체계를 적용했다. 하지만 많은 외투기업이 감면 기간이 끝날 무렵 새로운 외투기업을 세워 감면 혜택을 이어 가는 편법을 썼을 뿐 아니라 기술 이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지난해 3월 세율체계를 바꿔 외투기업에 매기는 세율을 높이기로 했다.

대만은 한국의 조세특례제한법에 해당하는 산업고도화촉진조례를 폐지하는 대신 법인세율을 대폭 낮춰 국적과 상관없이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홍콩도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낮은 법인세율(16.5%)로 투자를 유도할 뿐 별도의 감면제도는 없다.

다른 나라가 일찌감치 경쟁적으로 자국기업에 대한 역차별 해소에 나선 데 비해 한국 정부의 행보는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손영기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팀장은 “국내기업의 상대적 세금 부담이 커지면 투자 여력도 경쟁업체에 비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 ‘역차별 해소’ 경제 전반에 확산

외투기업에 대한 감면제도 개편은 큰 틀에서 볼 때 국내 기업의 역차별 문제를 해소하려는 경제 전반의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현재 정부는 자산이 2조 원 이상인 대기업집단 소속 계열사가 자산의 40% 이상을 타 기업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기로 한 상태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본사를 제외한 자체 자산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출총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투자자금을 활용하는 데 국내기업이 더 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룹 내 계열사 간 상호출자를 금지하거나 수도권 공장 증설을 제한하는 규제도 외투기업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완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번 세제 개편도 이런 맥락에서 추진되는 것이지만 역차별을 해소하는 방식은 급격한 제도 변경이 가능한 제조업 분야와는 다르다. 감면제도를 전면 폐지하기보다는 1, 2개 조항부터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해외 투자자들에게 반(反)외국인 정서가 반영된 정책이란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다.

○ “도움되는 기업만 선별 지원”

조세 전문가들은 최근 법인세 인하 방침과 관련해 “낮춘 세율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불필요한 재정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예컨대 현행 최고 25%인 법인세율을 갑자기 10% 정도로 내려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면 국내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투기자본의 진출만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감면제도 대신 도입될 가능성이 있는 현금보조금제도는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기업을 가려내는 이점이 있다.

실제 싱가포르는 자국에 진출하려는 기업과 협상한 뒤 세율을 결정하는 ‘맞춤형 조세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이 기업과 비공개로 접촉해 자국 내 산업 파급효과 등 경제 기여도를 판단해 감면 폭과 감면 기간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도 성장과 고용 창출에 도움이 되는 외국기업을 선별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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