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기업 지분투자’로 고수익 사냥

  • 입력 2008년 2월 21일 03시 00분


비상장기업 지분 인수로 상장차익 노려… 투자전문사 설립도

우리은행은 2006년 12월 세계 10위 수준의 조선업체인 ‘성동조선해양’의 지분 9.23%를 투자한 데 이어 지난해 6월엔 성동조선의 자회사인 성동중공업의 지분 15%를 추가로 사들였다. 이들의 모(母)기업인 성동산업과 1990년대부터 대출 거래를 해 오는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신뢰를 갖게 돼 투자한 것이다.

2003년 설립된 성동조선의 매출은 2005년 546억 원에서 2006년 2330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 회사는 올해 국내외 상장(上場)을 추진하고 있어 우리은행도 상당한 상장 차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들이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아직은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가 대종을 이루고 있지만 일부 은행은 비상장기업에 직접투자한 뒤 상장 후 차익을 얻는 ‘에인절 투자자’로서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기업의 주식이나,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전환사채(CB) 등에 총 2624억 원(25건)을 투자했다. 이 은행은 기업 지분 투자를 늘리기 위해 올해 1월 ‘전략투자팀’을 ‘전략투자부’로 확대했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국내 60여 업체의 지분에 투자했고 올해엔 투자 대상을 200여 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기업은행 측은 “지난해까지 지분을 투자한 회사 중 12곳이 코스닥에 상장했다”며 “올해 5곳의 기업공개(IPO)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은 우리은행 투자은행(IB)본부에서 자기자본으로 기업 지분, CB 등에 직접 투자하고 있으며 자회사로 ‘우리PE’라는 사모투자전문회사를 세웠다.

은행은 특정 기업의 지분을 최대 15%까지만 보유할 수 있지만 사모투자전문회사는 기업의 인수합병(M&A)이나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 설립하는 합자회사여서 이런 제한이 없다. 우리PE는 지난해 6월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금호종금의 지분 41.43%를 인수했다.

은행들의 이런 지분 투자는 은행들이 과거에 부실기업의 이자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대출을 CB로 전환하던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과거 CB 전환이 투자 원금 회수를 목적으로 했다면 최근 투자는 우량기업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이 오랫동안 자금을 빌려 주는 과정에서 해당 기업의 성장성이나 속사정 등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점도 지분 투자에 나서는 이유다.

하지만 아직까지 은행들의 지분 투자는 ‘분산 투자’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일부 나온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의 불투명성 때문에 저평가된 기업의 M&A를 촉진하기 위해 사모투자전문회사를 허용했다”면서 “도입 취지를 살리려면 은행들이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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