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만…” 사업자 단체들 벽 쌓고 담합

  • 입력 2008년 1월 29일 02시 59분


‘공정거래 위반’ 1981년 이후 1271건… 드러나지 않는 사례 더 많아

#1. 복싱도장 운영자들의 모임인 전국프로권투체육관협의회의 내규에는 ‘본회에 등록된 복싱체육관에서 직선거리 2km 이내의 복싱체육관은 본회에 등록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 협의회에 등록하지 못하면 한국권투위원회(KBC)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이 규정은 ‘기존 체육관 2km 이내에는 새 체육관을 열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에 대해 지난해 8월 “사업자 수를 제한하는 위법행위”라고 결론 내렸다.

#2. 부산 동래구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업자들의 모임인 ‘부산 동래구 중식분과위원회’는 밀가루와 단무지를 납품하는 업체들로부터 180만∼200만 원씩의 찬조금을 받고 이 업체들과 거래하도록 회원들에게 요청했다. 이들은 지난해 7월 공정위에 적발돼 제재를 받았다.

#3. 경기 시흥시 은행동 지역 부동산중개업자들의 협의회는 일요일에 영업을 하지 못하도록 내규를 두고 이를 감시하기 위해 2인 1조로 순찰조를 편성했다. 협의회는 이 밖에도 ‘회원은 비회원 중개소와 매물정보교환이나 공동거래 등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두고 ‘최초 위반 시는 벌금 200만 원, 1개월 동안 벌금을 안 내거나 2회 위반 시는 제명’이라는 벌칙도 정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7월 이를 적발해 제재했다.

28일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거래법이 제정된 1981년부터 지난해까지 공정위가 사업자단체의 위법행위를 적발해 시정조치를 내린 1271건 중 담합과 관련된 사건이 전체의 59%인 745건이었다. 이어 사업 내용이나 활동을 제한하는 행위 278건, 불공정거래행위 강요 등 60건, 사업자 수 제한행위 51건 등의 순이었다. 공정위는 이들 행위에 대해 686건의 시정명령을 내렸으며 120건에 대해서는 과징금까지 부과했다.

사업자단체는 경제발전 초기단계에는 해당 업종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정보나 경영기법 공유, 정부 정책 수립에 대한 조언 등 순기능도 해 왔다. 또 회원사의 이익을 위해 불필요한 과당경쟁을 막는 교통정리를 해 주는 등 역할도 있다.

하지만 점차 ‘제 살 깎기 경쟁’ 지양 등의 미명하에 가격 담합을 하고 경쟁을 제한하면서 결국 소비자 이익을 저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저서 ‘국부론’에 “동종업자끼리 만나면 친목이나 오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 간의 대화는 대중의 이익에 반하는 결탁을 하거나 가격을 올리려는 고안으로 끝난다”고 썼다.

물론 대기업 간 기술제휴나 항공사 간의 마일리지 공유 등 기업 간 협조가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은 한국에서 스미스의 경고가 상당 부분 유효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 카르텔팀 당국자는 “아무리 친목이나 종교를 내세웠다 하더라도 동업자끼리 모여 가격이나 거래 조건 등을 얘기하면 위법행위로 발전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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