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M&A놓고 채권은행들 ‘동상3몽’

  • 입력 2007년 10월 26일 03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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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銀 ‘신중’ 외환銀 ‘빨리’ 우리銀 ‘난감’

“산업은행의 반대로 대형 인수합병(M&A) 작업이 하염없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책임지기 싫으니까 정권 바뀔 때까지 최대한 버텨 보자는 거죠.”(외환은행 관계자)

“주요 M&A 매물들을 보세요. 어디 하나 만만한 게 있습니까. 국부(國富)를 고려하면 신중해야 돼요.”(산업은행 관계자)

“외환은행과 산업은행의 틈바구니에서 난처하네요.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은행은 정부의 심기도 살펴야 합니다.”(우리은행 관계자)

현대건설 채권단 운영위원회 소속 3개 은행의 고위 관계자들이 털어놓은 ‘동상이몽(同床異夢)의 변(辯)’이다.

현대건설 채권단은 9개 금융회사로 구성돼 있지만 나머지 6개 은행은 운영위원회에 M&A 등의 실무절차를 위임해 놓고 있다.

채권 은행들의 의견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 대우조선해양 등 굵직굵직한 M&A 매물들의 처리가 기약 없이 늦춰지고 있다.

시가총액 10조 원이 넘는 현대건설은 M&A가 지연되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5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마쳤지만 1년 반이 지나도록 ‘새 주인’을 못 찾고 있다.

김창록 산은 총재가 지난해 8월 “부도난 회사(현대건설)가 좋아지니까 원래 주인(범현대가)이 가져가겠다는 건 도덕적 해이”라며 ‘옛 사주(社主) 문제’의 선(先)해결을 주장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산은이 매각 주관 은행인 대우조선해양도 올 하반기에 매각 작업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역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산은 측은 “반도체, 조선 등 국내 기술이 중국 등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장기간 해당 기업을 보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정권 말이니 새 정부에서 새 틀을 짜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의 매각 주관 은행인 외환은행은 이달 초 채권단 실무자 회의를 열어 ‘주가 상승에 따른 M&A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외환은행은 이 자리에서 현재 채권단이 보유한 현대건설 지분 49.7% 중 경영권 유지에 필요한 40%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을 팔 것을 제의했지만 산은의 반대에 부닥쳤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M&A를 내년 이후 본격화하려면 지금부터라도 매각 주간사회사 등을 정해야 한다”며 “잠재적 인수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안이었으나 산은이 ‘시기상 적절치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대주주가 예금보험공사인 우리은행은 어느 쪽의 편도 들지 못한 채 중간에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는 은행 매각 전에 주요 M&A를 서둘러 주주 배당을 챙기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며 “대형 기업의 매각은 정치 논리를 배제하고 시장주의와 국부 실현의 균형 속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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