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의 머리띠 잊은 지 오래” 세계 자동차업계 무파업 행진

  • 입력 2007년 9월 8일 02시 59분


코멘트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1951년 이후 올해까지 57년간 무파업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도요타의 일본 다하라 시 렉서스 전용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새로 조립된 렉서스를 검사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1951년 이후 올해까지 57년간 무파업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도요타의 일본 다하라 시 렉서스 전용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새로 조립된 렉서스를 검사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세계 10대 자동차 회사는 현대자동차를 제외하면 대부분 10년 이상 무파업으로 평화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자동차 업계에서 파업은 사실상 사라진 ‘옛일’이 됐으며, 노사가 긴밀히 협력해 생산성 향상에 ‘다걸기(올인)’하고 있다.

이번 임금·단체협상에서 1997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 없이 타결에 성공한 현대차 노조도 올해를 시작으로 무파업의 대열에 동참해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 도요타 57년, 혼다 51년 무파업 기록

본보가 7일 세계 10대 자동차회사 본사 공장의 파업 현황을 조사한 결과, 자동차 생산량 기준 세계 7위인 프랑스 푸조-시트로앵을 제외하고는 1999년 이후 파업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GM, 도요타, 포드, 폴크스바겐,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상위 5개 업체는 최소 9년에서 최장 57년 동안 파업이 발생하지 않았다.

메이저 자동차 업계에서 파업은 최후의 협상도구로조차 사용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푸조-시트로앵은 올해 5월 일자리 감소 문제 등으로 파업을 벌였지만 일부 노조원만 참여했고, 회사 측에서 비노조원들을 투입해 생산라인을 가동했기 때문에 생산 손실은 크지 않았다. 푸조-시트로앵의 이번 파업도 연례적인 것이 아니라 1990년 이후 처음 발생한 것이다.

특히 일본 도요타는 57년, 혼다는 51년간 무파업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 세계 자동차 노조, 공생의 길 택해

세계 자동차 업계에 파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은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강성 노조의 주도로 파업이 잦았다. 하지만 치열한 업계 경쟁으로 회사 경영상태가 악화되면서 1990년대부터 파업을 자제하고 근무시간 연장에 합의하는 등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폴크스바겐 노사는 지난해 9월 임금 인상 없이 주 근무시간을 28.8시간에서 33시간으로 늘리는 데 합의했다.

회사 측이 생산성이 높고 임금이 5분의 1 이하인 동유럽으로 공장 이전을 추진하면서 일자리 감소가 우려되자 노조가 근무시간 연장에 합의한 것이다. 아우디 등 다른 유럽 자동차회사 노조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독일의 대다수 자동차기업 노조가 소속된 금속노조(AG Metal)의 하르무트 마이너 지부장은 최근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는 것이 노사 모두의 과제이며 노조도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생산의 효율을 높이는 데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 자동차 노조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강성으로 유명했던 전미자동차노조(UAW)는 ‘미국 자동차 산업을 살려야 한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지난해 6월 로널드 제틀핑거 UAW 위원장은 소속 노조원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5000여 명의 인력 감축을 포함한 구조조정안을 전격 수용했다.

그는 “미국 자동차산업이 존속하려면 노조가 구태의연한 모습을 버리고 공생할 수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선언했다.

○ 한국 자동차 노조, 올해가 변화의 기회

현대차 노조는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1994년을 제외하고 매년 임금 및 단체협상 관련이나 정치적 이슈를 둘러싼 파업을 벌여 왔다. 올해 초에도 정치파업을 벌인 바 있다.

지금까지 총파업일수는 335일로 그동안의 생산손실 규모는 104만여 대, 10조5000억 원에 이른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파업으로 인한 우리나라 전체 노동손실 일수는 120만567일이고 이 가운데 현대차와 기아차 두 회사의 파업으로 인한 노동손실 일수는 52만2011일로 전체의 43.5%를 차지했다.

하지만 올해 현대차 노조는 모처럼 파업 없이 회사 측과 임단협을 마쳤다. 현대차 노사가 파업 없이 임단협에 합의한 것은 1997년 이후 처음이다.

재계 등 각계에서는 현대차가 올해를 계기로 무파업 행진의 기록을 세우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재원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초우량기업을 유지하는 조건 중 하나가 ‘무파업’일 정도로 지금은 노사 상생이 매우 중요한 시대”라며 “현대차도 무파업의 새로운 전통을 세워 경쟁력을 더욱 높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세계 10대 자동차 업체의 본사 공장 파업 현황
회사 파업 현황생산량
GM1999년 이후 무파업838만 대
도요타1951년 이후 무파업812만 대
포드1988년 이후 무파업620만 대
폴크스바겐1970년대 이후 무파업524만 대
다임러크라이슬러1998년 이후 무파업485만 대
현대·기아차1987년 노조 설립 후 1994년만 빼고 올해까지 파업(정치파업 포함)371만 대
닛산1990년대 중반 이후 무파업359만 대
푸조시트로앵1990∼2006년 무파업339만 대
혼다1957년 이후 무파업336만 대
르노1986년 이후 무파업253만 대

생산량은 2006년 오토모티브뉴스 기준. 자료: 각 업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