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 국제시장… 하나 쓰러지면 다 죽는 구조”

  • 입력 2007년 9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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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환계(連環計)라는 것 아시죠?”

외환은행 외환운용팀의 선임 딜러인 구길모(38) 차장은 불쑥 삼국지 얘기를 꺼냈다.

연환계란 적끼리 서로 묶이도록 해 행동을 둔화시킨 뒤 공격하는 병법이다. 삼국지에서 조조는 방통의 계략에 속아 쇠줄로 배들을 묶은 뒤 화공(火攻)을 당해 100만 대군을 잃었다.

“한 애널리스트가 그러더군요. 지금 국제 금융시장이 바로 그런 모습이라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은 미국의 개별적인 문제지만 국제시장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한곳에서 진폭이 커지면 파장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외환위기 때는 한두 나라만 쓰러지면 됐지만 이제는 하나가 쓰러지면 다 죽게 돼 있는 구조죠.”

구 차장은 외환은행의 외환거래 부문에서 ‘주포(主砲)’로 불린다. 메인 딜러라는 뜻이다. 12명으로 구성된 외환운용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하루 거래하는 금액만 약 20억 달러. 국내 외환시장의 달러화 거래 금액이 하루 200억 달러니 그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외환딜러는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등 외국 화폐를 사고팔면서 차익을 남기는 게 주임무다. 주식시장으로 말하면 데이트레이더 격이다.

환차익으로 하루에 6억 원을 번 적도 있지만 2004년 환율이 급락했을 때는 오름세로 예측하는 바람에 3억 원을 손해 보기도 했다.

8년여간 외환거래 현장에서 ‘총성 없는 전쟁’을 펼쳐 온 구 차장은 정부가 무리한 외환시장 개입을 중단한 2004년 10월을 국내 외환시장 체질 변화의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그는 “그전까지는 정부 당국이 특정 환율을 방어하는 전략을 썼지만 이후 급등락만을 막으면서 기능을 중시하는 스무딩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미세조정) 정책에 나서면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환율이 결정되는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외환시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여전히 많다고 강조했다.

구 차장은 “국내 외환시장에서 외국인들이 차지하는 거래 비중은 20∼30%지만 시장의 주도권은 그들이 쥐고 있다”며 “핵심 정보를 그들이 갖고 있기 때문에 국내 업계는 외국인들이 왜 원화나 달러화를 샀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외환시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달러화 파운드화 엔화처럼 원화가 24시간 결제통화가 돼야 한다”며 “싱가포르 화폐조차 24시간 결제통화인데 원화는 국제시장에서 아직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환율 전망에 대해서는 “연말까지는 수출업체들의 달러화 매도로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가 지속되겠지만 서브프라임 문제가 계속 영향을 미치면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늘면서 달러당 1000원 선 위로도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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