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로 최고를]<18>회로기판 납땜…고영테크놀러지

  • 입력 2007년 6월 26일 04시 10분


코멘트
고영테코놀러지의 한 직원이 인쇄회로기판(PCB)의 납땜 상태를 3D로 검사할 수 있는 장비를 제작하고 있다. 이 회사는 장비의 불량 요인을 없애기 위해 직원 한 명이 혼자 장비 한 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제작하게 한다. 신치영 기자
고영테코놀러지의 한 직원이 인쇄회로기판(PCB)의 납땜 상태를 3D로 검사할 수 있는 장비를 제작하고 있다. 이 회사는 장비의 불량 요인을 없애기 위해 직원 한 명이 혼자 장비 한 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제작하게 한다. 신치영 기자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황금색으로 촘촘히 보이는 것들이 납땜을 한 부분입니다.

이 납땜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제품에 치명적인 불량이 발생합니다.” 고영테크놀러지의 고광일(50) 사장은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인쇄회로기판(PCB)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내부에 수없이 많은 회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이 PCB는 회로들이 나오는 구멍마다 좁쌀 크기의 금색 납땜이 돼 있었다.

이 조그마한 PCB에 1000여 곳의 납땜이 돼 있으니 얼마나 정밀한 장치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납땜은 PCB 내 회로와 반도체 칩을 연결해 주는 구실을 한다. PCB 회로에 얹는 납땜 양이 적정량보다 적으면 반도체 칩과 연결이 안 되고 많으면 전기가 잘 흐르지 않아 제품 불량의 원인이 된다. 》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고영테크놀러지는 PC, 휴대전화, 자동차, 각종 전자제품 등에 핵심부품으로 들어가는 PCB의 납땜이 제대로 됐는지를 입체적으로 검사하는 3차원(3D) 납땜 검사장비를 만드는 회사다.

○창업 4년여 만에 세계 1위에 등극

고 사장은 1980년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금성사(현 LG전자), LG산전, 미래산업 등에서 22년간 기술 개발에 매달린 엔지니어 출신이다. 1983년부터 1997년까지 금성사 중앙연구소와 LG산전 연구소에서 산업용 로봇 개발을 담당했으며 2002년 3월까지 미래산업 연구소장을 지냈다.

고 사장은 ‘내 손으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세계 일류 기업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독립의 길을 나섰다. 2002년 5월 기획, 재무, 영업 등을 맡을 동료 3명과 고영테크놀러지를 창업했다.

사실 그는 창업 당시까지 사업 아이템을 정하지 않았다. 기술 개발에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과 그를 따라오겠다는 10여 명의 최고급 엔지니어뿐이었다.

고 사장은 그동안 인연을 맺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 담당자를 3개월 동안 찾아다니며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시장에서 원하는 제품이 납땜 불량 검사장비라는 사실을 알았다.

대기업 담당자들은 그에게 “PCB의 납땜 불량을 제대로 검사할 수 있는 장비가 나오면 언제라도 사겠다”고 했다.

당시 PCB 납땜을 검사하는 데 사용된 것은 2차원(2D) 검사장비들이었다. 2D 검사장비는 납땜의 면적만으로 납땜 양의 적정성 여부를 검사한다. 측정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오차가 심했다.

고 사장은 3D 방식으로 납땜의 면적과 함께 높이를 측정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사업 아이템이 정해지자 엔지니어 11명이 모여들었다. 이들과 함께 7개월 동안 밤을 새워가며 3D PCB 납땜 검사장비 개발에 매달렸다.

2003년 2월 이렇게 탄생한 제품이 KY-3030이다. 세계적으로 PCB 납땜 3D 검사장비를 개발한 회사가 몇 곳 안 되는데, 고영테크놀러지는 7개월 만에 이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끈질긴 해외시장 개척

당시 이 분야에서 국내외시장을 장악한 세계 1위 기업은 미국의 사이버옵틱스였다.

고영테크놀러지는 제품 개발 직후 국내시장부터 잠식해 들어갔다. 2003년 중반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등 디스플레이 업체인 S사는 사이버옵틱스와 고영테크놀러지의 제품을 생산라인에 배치해 직접 성능을 시험해 본 뒤 고영테크놀러지의 제품을 선택했다.

고 사장은 “기다리던 제품을 만났다는 듯 국내시장의 반응이 뜨거웠다”며 “한 대 가격이 2억 원 안팎인 고가(高價) 장비에 대한 주문이 밀려들었다”고 말했다.

고영테크놀러지는 곧바로 해외시장 공략에 나섰다. 하지만 국내시장만큼 쉽지는 않았다.

2003년 말 대만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여했을 때의 일. 2주일 동안 카탈로그를 들고 발바닥이 부르틀 정도로 대만 업체들을 찾아다녔다. 몇 시간 동안 제품의 우수성을 설명했지만 대만 기업들은 한국에서 온 신생업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기업이 장비의 성능을 비교해 보고 점수를 가장 많이 얻는 기업의 제품을 사겠다고 나섰다.

성능 비교가 끝난 뒤 이 기업의 임원은 “고영테크놀러지의 제품이 1등”이라고 귀띔해 줬다. 하지만 다른 기업의 제품이 선택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기업의 사장이 “뭐 하는 회사냐”며 이름이 잘 알려진 경쟁기업 제품을 주문하라고 지시한 것.

해외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2003년 11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전시회에서였다. 이 전시회에 참석한 유럽 최대 전자제품 회사가 고영테크놀러지의 제품을 주문해 왔다. 그 덕분에 이 전시회에서 수십 대를 한꺼번에 수주했다.

○세계 5대 휴대전화 제조사 중 4곳이 고객

유럽시장을 석권하자 미국시장 공략은 한결 쉬웠다. 미국의 사이버옵틱스가 제품 가격을 낮추며 수성(守成)에 나섰지만 고객사들은 가격보다 높은 성능을 원했다. 가격이 20% 정도 싼 사이버옵틱스 대신 고영테크놀러지의 장비를 주문하는 기업이 줄을 이었다.

결국 고영테크놀러지는 지난해 사이버옵틱스를 제치고 이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이 됐다. 직원 67명으로 지난해 올린 매출은 166억 원. 사이버옵틱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114억 원이었다. 관련 업계에서 PCB 납땜 3D 검사장비 시장의 잠재 규모를 10조 원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영테크놀러지는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큰 업체다.

현재 세계 5대 휴대전화 제조업체 가운데 4곳, 세계 5대 자동차 전자부품 제조업체 중 4곳, 세계 최대 PC 제조업체 등이 고영테크놀러지의 고객사다.

이현희 전략기획팀장은 “생산성과 직결되는 제품이다 보니 우리 회사의 장비를 구매하는 기업들이 이를 회사 기밀로 삼고 있다”며 “이 때문에 계약서에는 ‘장비 구매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고객이 원하는 대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