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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4월 2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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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처럼 흐른 세월들.
눈물도 흐른다.
청춘을 바쳐 기업을 키운 역전의 용사들.
사막에서 동토까지 달러 사냥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노후?
보통 사람보다야 ‘명예롭게’ 보내지만 나이 들면서 느끼는 고독감은 다를 게 없지.》
“가는 세월∼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12일 오후 코오롱그룹 창립 50주년 행사가 열린 경북 구미시 ㈜코오롱 공장 운동장. 50주년을 의미하는 ‘50’이 적힌 흰 모자에 잠바 차림의 이동찬(85) 명예회장이 행사장 단상에 서서 서유석의 ‘가는 세월’을 불렀다.
운동장에 모인 3000여 명의 임직원이 따라 부르면서 그의 노래는 합창이 됐다. 노래가 끝난 뒤 앞에 앉은 임직원들이 노(老)명예회장에게 큰절을 올리자 파도타기하듯이 맨 뒤에 있는 직원들까지 큰절을 했다.
이 장면은 한국 재계의 명예회장들이 해당 그룹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한 재계 관계자는 “명예회장들은 대부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 평소에는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지만 임직원에게는 그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힘이 된다”고 말했다.
“권한과 책임은 없지만 명예는 있다.”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이 ‘명예회장’에 대해 내린 정의다.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은 “회사를 아끼는 마음은 같지만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게 차이”라고 한다.
명예회장이 되면 권한이 없어지는 만큼 보수도 깎인다. 보통 회장 때보다 50∼70%로 줄어들어 연간 3억∼7억 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예회장과 고문은 경영에서 한발 물러서 있다는 점은 같지만 ‘지분’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있다.
재계 순위 50대 그룹(공기업 및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 및 계열사의 명예회장은 모두 12명이다. 김석원 쌍용양회공업 명예회장을 제외하면 모두 회사의 최대 주주이거나 오너 일가다.
‘종신 집권’도 가능한 그룹 오너들이 왜 ‘대권’을 넘겼을까.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회장 시절 “70세가 되면 경영권을 넘기고 평소 내가 하고 싶던 일을 하며 노후를 보내겠다”고 말해 왔다. 그는 만 70세 되던 해에 이 말을 실천에 옮겼다.
박용곤 명예회장은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동생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비교적 이른 나이인 64세에 경영권을 넘겼다.
80대의 한 명예회장은 “나이 들면서 친구들이 죽어 점심 같이 할 친구가 없는 게 서글프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보다 훨씬 ‘명예롭게’ 노후를 보내지만 나이 들면서 느끼는 고독감은 어쩔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외로움을 덜어 주는 건 자녀들의 몫이다.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부부는 두 달에 한 번 이상은 6남매 부부와 함께 식사 모임을 가진다. 이 모임은 1인당 식사비가 3만 원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 ‘3만 냥 클럽’이라고 부른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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