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급관행 문제없다” 기업 손 들어줘

  • 입력 2007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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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검이 3일 현대자동차의 사내 하청을 적법하다고 판정한 것은 불법 파견의 범위를 노동부나 노동계에 비해 ‘좁게’ 해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현대차처럼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원청업체 근로자와 동일한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형태인 사내 협력업체의 경우 불법 파견 여부를 놓고 노사가 서로 팽팽하게 해석을 달리해 왔다.

검찰은 불법 파견적인 요소가 다소 있더라도 원청업체(현대차)가 사내 협력업체 근로자를 직접 지휘 감독하지 않았다면 합법적인 도급으로 판단했다.

검찰의 이번 판단으로 재계는 협력업체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한편 노동계의 불법 파견 공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거를 얻었다.

반면 노동계는 “기업의 불법적인 비정규직 고용 관행에 면죄부를 줬다”며 검찰 결정에 항의투쟁을 벌일 뜻을 밝혀 불씨는 남아 있다.

▽현대차의 노무관리 여부가 쟁점=불법 파견의 쟁점은 현대차가 협력업체 근로자를 직접 관리 감독했는지 여부.

현대차가 직접 협력업체 근로자의 노무관리를 맡았다면 협력업체는 근로자를 파견한 것이다. 이 경우 협력업체가 파견업체 등록이나 근로자 파견 계약을 하지 않았으므로 불법파견에 해당된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는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현대차의 작업표준지시서 등을 준수하는 등 사실상 현대차의 지시를 받아 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현대차의 지시는 간접적인 것에 불과하며 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한 업무지시는 협력업체가 직접 했다”고 판단했다.

협력업체 근로자가 노무관리에서 현대차에 종속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협력업체는 사업주로서 실체가 없고 현대차에 근로자를 공급하는 ‘무허가 근로자공급사업자’라는 노동계의 주장도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협력업체들이 채용, 해고, 승진, 징계 등 인사결정권을 행사하며 4대 보험료를 직접 납부하는 등 사업자로서 실체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계, 도급 관행의 부담 덜어=자동차, 전자, 조선 등 제조업계는 아웃소싱의 개념으로 사내 협력업체(하청업체)를 폭넓게 이용하고 있다.

협력업체를 이용하면 경영 여건에 따라 고용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고 해고에 따른 비용도 적게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업장 내에서 원청업체 근로자와 협력업체 근로자가 함께 일하다 보면 불법 파견의 요소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원청업체가 직·간접적으로 협력업체 근로자에게 지시할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대차 외에도 2004년 이후 GM대우, 하이닉스매그나칩, 기륭전자 등에서 불법 파견과 관련한 분쟁이 잇따랐다.

이번에 현대차가 불법 파견 혐의로 기소됐다면 현대차는 기업 이미지 악화와 벌금 부담, 파견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노조의 압박 등을 떠안아야 했다. 이는 사내협력업체를 사용 중인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재계가 검찰의 처분을 환영하는 것도 이 같은 부담을 덜게 됐기 때문.

그러나 원청업체마다 도급의 형태가 천차만별이어서 이번 결정을 다른 업체에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불법 파견은 7월부터 정규직화=검찰의 이번 결정은 7월 1일부터 시행할 비정규직법과 직접 관련은 없다.

비정규직법은 파견근로, 기간제근로 등 비정규직으로 판정된 근로자에게만 적용된다.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 기업은 적법과 불법을 가리지 않고 2년 이상 일한 파견근로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 기존 법은 적법 파견에 대해서만 2년 이상 일했을 때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7월 이후에는 현대차와 비슷한 사례에서 불법 파견으로 판정돼도 해당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고용될 수 있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울산노동지청-경찰 “불법 파견”… 검찰이 뒤집어▼

3일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파견근로’의 적법성 논란이 처음 불거진 것은 2004년 5월.

당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는 “현대차와 사내 102개 협력업체가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근로자 파견 사업을 하고,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정 업무에 근로자를 파견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부산지방노동청 울산지청에 현대차 대표와 102개 협력업체 대표 등 총 128명을 고발했다.

울산지청은 “현대차와 협력업체 간에 노무 관리와 사업 경영이 독립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노조의 고발 내용을 대부분 받아들여 2004년 9월과 10월, 2005년 1월 등 세 차례에 걸쳐 시정 명령을 내렸다. ‘파견근로자법 위반 여부는 노무 관리와 사업 경영의 독립성 여부로 판단한다’는 노동부의 내부 지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차와 협력업체들은 “현대차와 협력업체가 독립 경영을 하고 있어 파견근로자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며 시정 명령을 거부했다.

이에 울산지청은 2004년 11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울산동부경찰서에 고발했다.

경찰은 102개 협력업체 가운데 25개 업체에 대해서만 지난해 1월 “파견근로자법을 위반한 혐의가 인정된다”며 기소 의견으로 울산지검에 송치했다. 77개사는 독립 경영을 하고 있지만 25개사는 현대차 소속 근로자의 결원이 발생할 때마다 비상 도급계약을 체결하는 ‘공정개선반’으로 운영되면서 결원이 발생한 업무에 근로자를 불법 파견했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공정개선반 소속 근로자들도 노무 관리상 다른 협력업체와 마찬가지로 현대차에 종속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모든 혐의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하청근로자 총 20만명 추산…급여는 정규직의 60~70%선▼

대기업들은 자동차, 전자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사내 협력업체를 폭넓게 이용하고 있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으나 정부와 노동계는 사내 협력업체 근로자가 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계는 사내 협력업체 근로자의 대부분을 대기업의 비정규직 근로자로 보고 있다.

형식적으로 사내 협력업체에 소속돼 있지만 실제로는 대기업으로부터 직접 업무지시를 받는 ‘대기업의 비정규직’이라는 주장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의 비정규직 근로자는 2003년 26만 명에서 2006년 36만9000명으로 급증했다.

사내 협력업체 근로자는 이 같은 공식 통계에도 잡히지 않으면서 사실상 대기업의 비정규직 처우를 받고 있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에 따르면 사내 협력업체의 급여는 입사 3∼4년차를 기준으로 현대차 정규직 근로자의 68% 선인 2200만 원이다.

다른 기업의 사내 협력업체 근로자도 대기업 정규직의 60∼70%의 급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내 협력업체 근로자는 학자금이나 주택자금 등의 지원에서도 대기업 정규직과는 큰 차이가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는 “사내 협력업체 직원들은 현대차 정규직이 꺼리는 분진 작업, 중량물 작업 등을 많이 맡는 편”이라며 “급여뿐 아니라 근로 조건도 열악하다”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근로조건은 협력업체 직원들이 불법 파견에 관련한 소송을 제기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법적으로 대기업의 직접 지시를 받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비슷한 일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급여가 낮고 기피업무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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