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업체 선정 비리' 현대차 노조 심각한 내홍

  • 입력 2006년 12월 12일 17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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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4만3000여 명으로 민주노총 핵심 사업장인 현대자동차 노조가 노조 기념품 납품업체 선정 비리를 놓고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상당수 조합원들은 노조 핵심 멤버 중 하나인 총무실장 이모(44) 씨가 노조 규약 상 입찰자격(자본금 150억 원 이상)이 없는 업체를 기념품 납품업체로 선정해준 혐의(업무상 배임과 사문서위조 등)로 경찰에 구속되자 허탈해하며 "집행부 총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집행부는 개인비리라며 사퇴를 거부하고 있어 노조는 심각한 내홍(內訌)을 겪고 있다.

●집행부 진퇴 논란

12일 오전 10시 노조 임시 대의원대회가 열리자 현장에는 "노조 집행부가 사퇴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오후 2시 속개된 대의원 대회에서 일부 대의원들은 노조의 자체 납품비리사건 진상조사보고가 끝나자 "구속된 이 씨 개인이 아닌 집행부 차원의 비리"라며 집행부 퇴진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집행부와는 무관하다"며 사퇴요구를 거부했다. 집행부는 이날 소식지를 통해 '노조 기념품과 관련한 집행부의 공식입장은 향후 상무집행위원회를 통해 정리하겠다'고만 밝혔다.

노조 집행부가 사퇴를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반 조합원들은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조합원 김모(46) 씨는 "노조 간부가 일반 조합원에게는 명분도 없는 '정치파업'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면서 뒤로는 납품업체와 검은 뒷거래를 하다니…"라며 분개했다. 노조가 올 들어 벌인 13차례의 파업 가운데 6월 26일부터의 임금 관련 파업을 제외한 12차례는 근로조건 개선과 관련이 없는 불법 정치파업이었다.

한 조합원은 노조 홈페이지에 "집행부가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주장했다. 노조 내 9개 현장 조직 가운데 하나인 전민투(전진하는 민주노동자 투쟁위원회)는 대자보를 통해 "이번 납품비리사건으로 노조의 도덕성과 자주성, 투명성이 짓밟혔다"며 집행부 퇴진을 요구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노조 간부의 비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 데다 노조 집행부가 매번 '개인비리'라며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 노조 대의원 정모(42) 씨는 대의원으로 활동할 때인 2002~2003년 12명을 현대차에 취직을 알선해주고 4억여 원을 받아 지난해 6월 구속됐다. 또 노조가 임금협상 결렬로 파업을 벌일 때인 올 7월 노조 대의원 백모(40) 씨는 조합원 2명을 상대로 사기도박을 벌여 5000여만 원을 가로챘다가 경찰에 구속됐다.

●다른 노조 간부로 수사 확대

경찰은 구속된 노조 간부 이 씨가 납품업체인 D사로부터 금품을 받았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이 이 씨의 금품수수나 다른 노조 간부의 연루 사실을 밝혀낼 경우 노조 집행부 퇴진 압력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현대차 노조는 제8대 집행부 때인 2000년 대우자동차 해외매각 반대 광고를 모 일간지에 실은 뒤 광고비를 회사 돈으로 지급했다가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 임기 10개월을 남겨놓고 사퇴한 전례가 있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현대차 노조의 도덕성 시비가 민주노총이 현재 벌이고 있는 4대 요구사항 관철을 위한 총파업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울산=정재락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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