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행복찾기]㈜ 노루페인트의 노조-회사 ‘유쾌한 갈등’

  • 입력 2006년 12월 9일 03시 02분


코멘트
《화염병, 쇠파이프, 각목, 분신…. 1980년대 민주화투쟁 현장의 모습이 아니다. 세계 11위 경제대국인 한국의 ‘2006년 노사관계 현주소’다. 한국의 노사는 함께 기로에 섰다. 기업도 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하고는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 그러나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씨앗이 노동현장 곳곳에 뿌려지고 있다. 극한 대립의 위기를 함께 넘기며 노사 상생의 새로운 관계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신 노사문화’의 살아 있는 교과서다. 》

늘 싱글벙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노루페인트의 김용목 노조위원장은 연말 보너스 지급일이 가까워지면서 입이 무거워졌다. 올해도 그는 보너스에 관해 사측에 아예 입을 다물 작정이다.

“요구사항이 있어도 회사에 말을 못 해요. 너무 팍팍 들어주니까(웃음). 올해도 성과가 좋으니 말 안 해도 100% 이상 성과급이 나올 겁니다.”

○ 노사 “내 안에 너 있다”

페인트업계 2위 기업인 노루페인트(경기 안양시 만안구 박달동)는 올해까지 8년 연속 ‘무분규 무교섭’ 협상을 이뤄 냈다. 3월 말 있었던 올해 임금협상은 1시간 만에 끝났다.

2002년 임금협상 때는 ‘희한한 논쟁’이 벌어졌다.

“올해 인상은 5% 선에서 제한하죠.”(노)

“5%요? 회사 실적을 보면 8%는 돼야 하지 않나요?”(사)

“오늘만 먹고 내일 굶을 건 아니잖습니까. 길게 봅시다, 길게.”(노)

노루페인트 노사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어두웠던 1998년의 터널’이 있었다. 그해 노루페인트(당시 대한페인트·잉크)는 창립 53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가 났다. 업계에서는 “노루는 다 망했다”란 소문이 흉흉하게 떠돌았다.

‘모두 함께 죽느냐, 살길을 찾아보느냐’는 갈림길에서 먼저 결단을 내린 건 직원들이었다.

“노조가 먼저 회사의 해고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1000여 명의 직원 중 300명가량이 자진해 회사를 떠났죠.”(진명호 이사)

떠나는 노조원들이 믿은 건 “회사가 살아나면 모두 복직시키겠다”는 약속 하나였다. 동료들을 떠나보낸 직원들은 상여금을 반납했다. 연월차 수당, 특근비도 받지 않았다.

직원들의 뼈를 깎는 노력 덕분에 경영 상황은 빠르게 회복됐다.

회사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 해고 이듬해부터 직원 복직에 들어가기 시작한 사측은 2001년 8월, 마침내 복직을 원하는 200여 명 모두를 다시 회사로 불러들였다.

노조가 생긴 1987년부터 갈등과 파업이 계속됐던 노사관계가 ‘신뢰에 바탕을 둔 상생의 관계’로 대전환을 맞은 순간이었다.

○ 勞는 경영학, 使는 노동학 공부

위기 이후 회사 경영진은 매달 직원들에게 월례 실적을 브리핑하고 직원들의 고충과 제안을 들었다.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이익 창출을 하고 싶으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소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노조 간부들이 대학에 진학해 경영학과 회계학을 공부하는 동안 사측 인사총무팀장은 대학원에서 노동학을 공부했다.

노루페인트 노조사무실의 벽에는 ‘투쟁’ ‘쟁취’란 구호 대신 ‘NOW 노루 2006’ ‘글로벌 스타트 2005’ ‘스타점프 2004’ ‘SAVE GIVE&TAKE 2003’ ‘체인지 아이디어 2002’ 등의 글귀가 새겨진 포스터가 차례로 반듯이 붙어 있다. 매년 노조원들이 공모해 만든 그해의 경영 슬로건이다.

“우린 강성노조는 아니지만 강한 노조입니다.”(김 노조위원장)

안양=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