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정신도 경영 마인드도 없어 “공무원 혁신 아직 멀었다”

  • 입력 2006년 12월 6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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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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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에서 초대 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낸 최종찬(사진) 씨는 5일 “작은 정부 대신 현 정부가 주장하는 ‘효율적인 정부’는 이론상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며 “공무원은 구조적으로 주인정신이 없고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에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민간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열린 ‘제305회 정책&지식 포럼’에서 ‘공직자의 책임감 확보 방안’을 주제로 30년 공직 생활에서 겪었던 일화들을 털어놨다.》

▽“매일 낮 12시 40분에 재료 떨어지는 식당”=최 전 장관은 정부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구조적 원인으로 주인정신의 부족, 경쟁과 도산 가능성이 없는 환경, 부족한 경영 마인드와 비용 개념, 정확한 평가와 인센티브가 어려운 상황을 들었다.

공공부문에서 주인정신이 부족한 예로 그는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운영하던 정부과천청사 내 자장면 식당의 일화를 들었다.

그가 자주 찾던 이 식당은 매일 낮 12시 40분경이면 ‘재료가 떨어졌다’며 청소를 시작하곤 했다. 보다 못해 “준비를 더 하는 게 어떠냐”고 제의하자 직원이 “남으면 선생님이 드실 거냐”고 반문했다는 것.

최 전 장관은 “식당에는 식권을 나눠 주는 직원과 회수하는 직원이 5m 간격으로 서 있었는데 이 일을 한 명이 하고 조금만 서비스를 개선해도 매출액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후 ‘왜 소련이 망했는지 알려면 정부과천청사 구내식당에 가 보면 된다’는 농담을 했다”고 회상했다.

공무원의 경영 마인드 부재로는 10년째 원자재를 쌓아 두고 있는 조달청 비축창고를 예로 들었다. 지방 순시 당시 쌓여 있는 원자재를 보고 이유를 묻자 담당자가 “구매 후 가격이 떨어져 팔지 못했다”고 답했다는 것.

최 전 장관이 “그럼 다시 가격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느냐”고 질문하자 담당자는 “값싼 대체품이 나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그럼 왜 안 파느냐”고 묻자 담당자는 손을 저으며 “팔아서 손해가 나면 감사에서 문제가 되지만 그냥 갖고 있으면 괜찮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1993년 대전 엑스포는 비용을 무시하고 결과만 중시한 사례로 언급됐다.

그는 “많은 나라를 유치해 엑스포 잘했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5만∼10만 인구가 사는 섬나라까지 모두 초청했다”며 “초청된 사람들이 민속 의상만 입고 앉아 있으면 나머지 비용은 한국 정부에서 다 댔다. 하지만 국민 세금을 아끼는 데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공무원이 관여 안 하는 게 최선”=최 전 장관은 “정부와 공공부문은 사기업과 달리 공익적 목적이 개입돼 평가 기준이 애매하고 사후 책임을 물으려 해도 동시에 여러 기관이 관여하고 있으며 잦은 인사 때문에 책임 소재를 가리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최 전 장관은 “건설교통부만 해도 12년간 13명의 장관이 바뀌었다”며 “나도 10개월 동안 장관을 하면서 예산 편성과 집행조차 해본 적이 없는데 주택정책, 화물연대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하면 솔직한 말로 억울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며 잦은 자리바꿈을 비판했다.

또 “광역시들이 앞 다투어 지하철을 착공했지만 대부분 경제성 검토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유치한 것”이라며 “시장에게 중요한 것은 10∼20년 후에 날 적자가 아니라 자신이 착공했다는 ‘업적’”이라고 지적했다.

기능 부진을 보이는 공공부문에 대한 그의 처방책은 신랄했다. “공공부문의 책임성을 높이는 방법은 별로 없기 때문에 가능한 한 공무원들이 관여를 안 하는 게 좋다”는 것. 공공부문 자체에 구조적 결함이 많아 아무리 혁신정책을 내세우며 손을 대도 개선이 어렵다는 진단이다.

최근 주택 가격 폭등에 대해서도 최 씨는 “정부의 행정력을 동원해서는 성공하기 힘든데 원가 공개, 규제 정책, 신도시 건설 등 반시장적 정책을 남발하다 보니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건교부 장관 재직 시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시발점이 된 10·29 부동산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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