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사는 공무원 비판하던 李실장 강남권 52평 ‘도장’찍어

  • 입력 2006년 11월 1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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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대책’이 발표되기 1주일 전인 2003년 10월 22일. 청와대에서는 당시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가 열렸다. 일주일 후 발표될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주제였다.

당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었던 이병완(사진) 현 대통령비서실장은 회의를 마친 뒤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누리꾼의 글을 보면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 사는 공무원들이 부동산 대책을 다루고 있어 가격안정 대책 수립에 한계가 있다’는 등 매서운 지적이 많다는 발언이 회의에서 나왔다”고 소개했다. 심지어 “군(軍)을 동원하면 어떻겠느냐”는 ‘우스개 발언’까지 나올 정도로 이날 회의 분위기가 심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시점에 이 실장은 정부가 공개적으로 성토 대상으로 삼고 있었던 강남권 대형 아파트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겨 가

그는 청와대 회의가 열리던 시점에 서울 송파구 오금동 S아파트 52평형 분양에 부인 명의로 당첨된 상태였다. 같은 달 27∼29일 이뤄진 계약 기간에도 차질 없이 계약을 마쳤다.

이 아파트 입주는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됐으며 현재까지 이 실장은 이 아파트를 갖고 있다. 그 이전에 서울 강북권인 광진구의 아파트를 보유했던 그는 정권이 “강남 불패(不敗)는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시점에 S아파트 구입으로 강남권 진입에 성공했다.

그리고 계약 마감일인 29일에는 종합부동산세 조기 도입 등 강남권을 겨냥한 초고강도 부동산 대책인 10·29대책이 발표됐다.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조기 도입 △투기지역 주택담보인정비율(LTV) 40%로 하향 조정 △투기과열지구 및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지정 등 특히 강남권 수요 억제를 겨냥한 10·29대책을 내놓으면서 “이 대책으로 강남지역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에 앞서 같은 해 10월 13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믿지 않고 있고, 공공연히 ‘강남 불패’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며 강력한 토지 공개념 제도 도입까지 시사했다.

10월 22일 대통령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가 토론장을 방불케 했고 이 실장이 회의 분위기를 공개한 것도 당시 정부 내의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

○ “다른 사람들은 계약 포기하게 겁주더니…”

물론 이 실장의 강남 아파트 구입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당시 이 아파트 분양에 당첨되고도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을 믿고 계약을 포기한 사람이 적지 않게 나오던 상황에서 정권의 부동산 대책 홍보 최전선에 섰던 사람의 처신으론 부적절한 면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마치 강남 아파트를 사면 패가망신할 것처럼 잔뜩 국민에게 겁주고도 자신은 버젓이 강남권의 대형 아파트를 계약한 것은 결국 스스로도 강남 집값이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 실장 역시 이백만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과 마찬가지로 부인 명의로 계약한 것이 눈에 띈다.

당시 정부 말을 믿고 계약을 포기했다는 한 시민은 본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일반인에게는 겁을 줘 계약을 포기하게 만들고 자기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계약했다”며 현 정권 실세들의 ‘이중성’을 비난했다.

이 실장은 현 정권의 다른 많은 고위 인사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을 공격할 때 들이대는 ‘잣대’와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잣대가 너무 많이 달랐던 것 같다.

靑 1급이상 47% ‘버블 세븐’ 거주

청와대 인사들의 ‘강남 선호’를 보여 주는 모습은 또 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올해 2월 관보에 올린 청와대 재산공개 대상자(1급 이상) 36명 가운데 47%인 17명의 거주지가 이른바 ‘버블 세븐’ 지역이었다.

‘버블 세븐’은 청와대가 5월 “아파트 가격 붕괴 가능성이 있다”고 꼽은 서울 서초, 강남, 송파 등 강남 3구와 양천구 목동, 경기 성남시 분당, 안양시 평촌, 용인시 등 7곳을 말한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결정에 깊이 관여한 정문수 대통령경제보좌관도 목동에 본인 명의로 45평형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보유하고 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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