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은행금고…하루 평균 6억4000만 원 ‘사고’

  • 입력 2006년 11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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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지방의 한 상호저축은행 대표 A 씨는 졸지에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구속영장에 적힌 죄명은 배임과 뇌물공여.

내용은 이랬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한 건설회사에 법적 한도의 6배에 이르는 금액을 대출해 줬다. A 씨는 당연히 사전에 이 건설회사의 사업성을 다각도로 검토해야 했지만 그런 과정도 전혀 없었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문제는 커졌다.

A 씨가 말도 안 되는 대출을 해 준 데는 금융감독원 직원 B 씨의 부탁이 있었다. B 씨는 그 대가로 이 저축은행을 상대로 한 정기검사 때 불법 대출 사실을 눈감아 줬다.

경찰은 “금융 사고를 감독해야 할 금감원 직원이 오히려 범죄를 주도한 것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주식투자에 실패하거나 큰 빚을 진 금융회사 중간 간부들이 주로 범죄를 저질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돈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이면 말단부터 사장은 물론이고 심지어 감독당국 직원까지 안심할 수 없다.

○ 갈수록 대담해져

범죄자가 다양해진 만큼 내용도 더 대담해졌다. 지난달 26일에는 한 시중은행 차장이 브로커와 짜고 고객 돈 4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 은행원이 가로챈 돈은 서울 중구 명동에서 ‘큰손’으로 불리는 사채업자의 예금이었다. 그는 맡긴 돈을 실제 입금하지 않고 가짜 통장에 입금된 것처럼 표시만 하는 수법으로 큰 손들을 울렸다.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돈도 뜯어내는 ‘간 큰’ 직원들도 있다.

올해 6월 몇몇 농협 직원은 고객 돈 90억 원을 빼돌려 주식에 투자했다가 모두 탕진해 당국에 적발됐다. 이 돈은 국정원의 전현직 직원들이 퇴직 후를 대비해 농협에 맡겨둔 것.

범죄가 대담하다보니 사고 금액도 크다.

금감원에 따르면 2001∼2005년 금융회사에서 일어난 횡령 및 유용 사고는 1496건, 사고 금액은 약 7990억 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일수(연간 250일 기준)로 보면 하루 평균 1건 이상, 6억4000만 원의 횡령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 은행권 ‘내부의 적’ 축출에 비상

은행들은 내부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저마다 상시검사시스템 등 비상 대책을 내놓고 있다. 상시검사시스템이란 영업점에서 거액의 현금이 인출되면 ‘왜 이렇게 많은 돈이 빠져 나가는지’ 체크하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내부제보시스템을 외부 전문기관에 아웃소싱 했고 국민은행은 내부 통제를 위해 영업점 창구 업무를 아예 3가지로 나눠 서로 견제하도록 했다. 하나은행은 부정기적으로 지역본부를 상호 검사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부 적발은 쉽지 않은 듯하다. 금융회사의 내부 직원이 저지른 금융사고의 30%가 사고 발생 1년이 넘어서야 발견되고 있다.

정창모 금감원 검사총괄팀장은 “금융권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 불안, 지나친 성과중시문화와 과당경쟁 등이 요즘 금융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금융회사들도 저마다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2001∼2005년 금융회사 횡령, 유용 사고 현황
권역사고 건수사고 금액(억 원)
은행5053,831
상호저축은행, 대부업체 등4682,850
보험441382
증권82926
합계1,4967,989
자료: 금융감독원,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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