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 한 글자 마케팅, 누구냐, 넌…!

  • 입력 2006년 10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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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의 특권 ‘T’.” “상상하라 ‘H’.” 최근 신문 등 언론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알쏭달쏭한 광고 문구들이다. 이 알파벳의 뜻이 무얼까 고민하고 있다면 벌써 광고의 ‘낚시질’에 걸려든 셈이다. 처음부터 직접 브랜드를 알리지 않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티저(teaser·놀리는 사람)마케팅이 진화를 거쳐 ‘알파벳 한 글자’와 만났다. 》

○눈에 ‘쏙’ 귀에 ‘쏙’

2000년 초 신비스러운 소녀 모델을 등장시킨 ‘TTL’ 티저마케팅으로 재미를 본 SK텔레콤은 최근 통합브랜드 ‘T’를 선보이며 알파벳 한 글자 마케팅을 시작했다.

‘T’의 첫 신문 광고에는 회사명이나 제품 설명은 찾아 볼 수 없다. ‘좋은 것도 더 좋아질 수 있다’는 문구와 광고 하단에 ‘T’ 로고가 전부. 이 회사 마케팅 전략팀 김무환 매니저는 “상징성과 확장성은 물론 호기심을 자극해야 하는 대표브랜드의 특성상 ‘T’가 가장 적합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의 ‘H’ 역시 마찬가지. 현대건설은 지난달 말 아파트 브랜드를 ‘힐스테이트(Hillstate)’로 바꾸면서 ‘H’라는 알파벳을 전면에 내세웠다.

현대건설 측은 본격 광고에 앞서 10월 3주 동안은 ‘H’를 강조한 이미지 광고를 내보내 브랜드에 대한 호기심을 끌어내고 있다.

중장비 생산업체 두산인프라코어도 최근 광고에서 애니메이션을 이용해 ‘헤이, D! 도대체 인프라가 뭔가?’라며 회사명 첫 글자인 ‘D’를 의인화해 회사를 친근하게 소개하고 있다.

○ 기업 이미지 개선 효과 ‘톡톡’

알파벳 한 글자 마케팅은 기업 이미지 변화에 큰 역할을 해 왔다.

현대산업개발은 2001년 아파트 브랜드를 기존 현대아파트에서 ‘I 파크’로 바꿨다. 현대건설이 짓는 아파트와 차별화하면서 혁신적(Innovative)인 이미지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2001년 다이너스클럽코리아를 인수해 만든 현대카드도 알파벳 한 글자 마케팅을 통해 카드 발급 확대로 신용불량자가 급증했던 ‘신용카드 사태’를 이겨 냈다. 현대카드 ‘M’이 등장할 당시에는 곧바로 ‘신용카드 사태’가 터져 너도나도 갖고 있던 카드마저 잘라버릴 때였다. 하지만 현대카드는 회사명이 아닌 ‘M’이라는 개별 브랜드에 마케팅 초점을 맞춘 결과 브랜드 이미지가 치솟았다. ○ 한글 활용 노력 필요

전문가들은 알파벳 한 글자 마케팅이 소비자들에게 쉽고 강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반면 영어 만능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제일기획의 박재항 브랜드마케팅연구소장은 “알파벳 한 글자 마케팅은 강력한 상징 기호로 인식하기 쉽고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알파벳을 한 기업이 독점하기는 힘들어 이 같은 마케팅이 난무할 경우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정승철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기업에서 아름다운 한글 단어를 고안해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데도 영문 알파벳에만 노력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한글의 정체성 확보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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