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규제 집값기준 하나같이…한국엔 ‘6억 넘은 죄’ 있다

  • 입력 2006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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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A아파트 31평형에 12년째 살고 있는 안모(52) 씨. 안 씨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6억4600만 원, 시세는 8억 원이 조금 넘는다.

아파트 한 채만 갖고 있지만 안 씨는 이 집을 팔면 6억 원이 넘는 금액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나이 들어 이 집을 담보로 역(逆)모기지론에 들려고 해도 공시가격 6억 원이 넘기 때문에 가입할 수 없다.

올해 이 집의 재산세는 지난해보다 50%가 오른다. 반면 같은 평수라도 6억 원이 안 되는 아파트는 재산세가 최고 10%(3억 원 이하면 최고 5%)만 오른다.

‘집값 6억 원’이 한국 사회에서 각종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기준으로 굳어지고 있다.

현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잡는다는 명분을 내걸고 공시가격이나 실거래가 ‘6억 원’을 잣대로 집값이 그 이상인 계층에 세금 부담과 규제를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 10여 개로 늘어난 ‘6억 원 규제’

주택 관련 세법에 6억 원이라는 숫자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9년 9월이다.

당시 정부는 1가구 1주택이라도 양도세를 물리는 고급 주택의 기준을 ‘전용면적 50평 이상, 실거래가 6억 원 초과’로 정했다.

지난해 ‘8·31 부동산 종합대책’을 통해 ‘6억 원’ 기준은 새롭게 부각됐다.

정부가 급등하는 서울 강남지역의 집값을 잡는다며 올해 1월부터 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을 ‘공시가격 9억 원 초과’에서 ‘6억 원 초과’로 낮춰 대상을 크게 늘린 것.

올해 ‘3·30 부동산 대책’에서는 주택투기지역 내 시가 6억 원 초과 주택을 사는 사람에게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적용해 대출받을 수 있는 액수를 대폭 낮췄다.

정부는 또 주택법 시행령을 고쳐 이달 말부터 실거래가가 6억 원을 넘는 주택을 살 때에는 ‘자금조달 계획서’를 시군구청에 내도록 의무화했다. 관할 지방자치단체나 건설교통부는 이 자료를 국세청에 제공할 수 있다. 결국 6억 원 초과 주택을 사는 사람은 세무조사까지 각오해야 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6억 원 기준이 적용된 규제는 10여 개로 늘었다.

아주대 현진권(경제학) 교수는 “관료들이 행정편의상 양도세에서 빌려온 ‘6억 원 기준’이 강남 집값을 잡는 도구로 마구잡이로 쓰이고 있다”면서 “부유층에 대한 현 정부의 ‘감정’까지 실린 듯한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 금액 기준 과도한 규제의 부작용

6억 원 경계선 아래에 있던 사람들까지 시간이 흐르면서 물가와 집값이 자연스럽게 오르면 새로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의 공시가격 6억 원 초과 주택은 아파트 등 공동주택 14만391채, 단독주택 1만8724채 등 총 15만9115채다.

올해 공시가격 5억 원 초과∼6억 원 미만의 공동주택 9만4856채는 집값 상승으로 공시가격이 오를 전망이어서 내년 종부세 부과 대상 주택은 26만 채 정도로 늘어날 전망이다.

서강대 김경환(경제학) 교수는 “1999년 6억 원이 ‘고급주택’의 기준이 됐을 때에는 대상이 거의 없었지만 6억 원이라는 금액기준을 고수한다면 세금부과 및 규제 대상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단국대 김상겸(경제학) 교수는 “공시가격이나 시가 6억 원 이상의 주택 소유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반면 그 이하인 사람에게는 상대적 혜택을 주는 차별이 더 확대된다면 심각한 재산권 침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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