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 연쇄 거래중단땐 1조시장 마비

  • 입력 2006년 8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1인당 만원까지만”24일부터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CGV용산을 비롯한 전국 CGV에서 문화상품권, 도서문화상품권, 스타문화상품권, 해피머니문화상품권, 포켓머니문화상품권 등 5종의 상품권 거래 금액이 제한됐다. 김재명 기자
“1인당 만원까지만”24일부터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CGV용산을 비롯한 전국 CGV에서 문화상품권, 도서문화상품권, 스타문화상품권, 해피머니문화상품권, 포켓머니문화상품권 등 5종의 상품권 거래 금액이 제한됐다. 김재명 기자
회사원 황모(38) 씨는 24일 퇴근 후 교보문고 매장을 찾았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 7권의 책을 구입하면서 평소 모아둔 도서상품권으로 결제하려고 하자 종업원이 “1인당 5만 원까지만 쓸 수 있다”며 나머지 금액을 현금이나 신용카드로 지불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황 씨는 “사전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가져간 상품권을 모두 사용할 수 없어 다소 당황했다”며 “지금까지 모아 놓은 상품권이 모두 휴지조각이 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바다이야기 파문으로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가 찍어 내는 상품권들이 유가증권으로서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해 가고 있다.

CGV와 교보문고가 24일 1인당 1회 사용 한도를 각각 1만 원과 5만 원으로 제한했으며, 메가박스도 25일부터 1인당 사용한도를 1만 원으로 제한한다. 이들 회사는 또 9월부터는 단계적으로 가맹점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

싸이월드를 운영하는 SK커뮤니케이션즈도 경품용 상품권 업체와의 거래 중단을 검토 중이다.

소비자단체들은 “어제까지 멀쩡하게 쓰던 상품권을 갑자기 사용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정부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경품용 상품권 발행 업체와 가맹점간의 계약이 끊길 경우 1조 원가량의 상품권 유통이 중단돼 내수시장에 큰 파문을 몰고 올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 가맹점들 왜 상품권 거래 제한하나

가맹점들이 계약관계에 있는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와의 거래를 중단하는 것은 발행업체들이 하루 수십억 원의 상품권 상환을 요청 받으면서 부도 위기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맹점들이 매출 감소를 감수하면서 상품권 사용 제한이라는 초강수를 통해 위험 회피에 나선 것이다.

CGV 재무팀의 한 관계자는 “대형 가맹점의 경우 고객에게서 받은 상품권을 모아 뒀다가 월말에 한꺼번에 상환 요청을 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수십억 원의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거래 제한 배경을 밝혔다.

교보문고 재무팀의 한 관계자도 “바다이야기 파문이 확산되면서 부도 가능성이 있는 상품권을 대량으로 들고 와 책을 구입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며 “가맹 계약이 끝나는 10월 이전에라도 거래를 전면 중단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 소비자 피해와 경제적 파장

관련법규에 의하면 상품권 부도사태가 빚어지더라도 상품권을 소지한 일반 소비자들은 피해를 일부 보상받을 수 있다. 상품권 발행업체에 대해 보증을 선 서울보증보험이 최종 소비자에 한해 1인당 30만 원까지 보상을 해 주도록 ‘상품권 보증보험 보통 약관’에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행성 논란이 있는 상품권 유통총판과 성인오락실 업주는 지급 보증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발행업체로부터 보상받는 방법밖에 없다. 오락실 업주 모임인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는 정부의 정책 실패로 피해를 보게 됐다며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날 서울보증보험 정우동 전무는 금융감독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품권 발행업체의 상환준비금과 서울보증보험에 제공한 담보금액이 약 4000억 원에 달해 일반 소비자들에 대한 상품권 상환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품권을 보유하고 있는 일반 소비자들은 당장 기존 가맹점에서 상품권 사용이 제한돼 불편을 겪어야 하고, 부도가 나면 일일이 서울보증보험 지점을 찾아가 피해 내용을 신고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불편이 예상된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장학민 금융보험팀장은 “가맹점이 상품권의 부도를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전 고지 없이 고객의 상품권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소비자의 편의를 감안하지 않은 자사 이기주의적인 행동”이라며 좀 더 차분하고 근본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상품권 업체가 연쇄적으로 부도날 경우 경제전반에도 큰 파장이 우려된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당초 상품권은 영화, 공연, 도서 등 문화관련 산업의 발전은 물론 소비 전반을 촉진시키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라며 “일반 상품권까지 거래가 중단될 경우 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은성 한림대 경영학과 교수는 “1조 원대 상품권 시장이 전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경기가 하락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는 소비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