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업인들 사면서 제외…與친기업 정책은 갈팡질팡

  • 입력 2006년 8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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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야, 원 참….”

11일 만난 경제단체 임원 A 씨는 자조 섞인 웃음부터 지었다. 재계는 광복절 사면에서 기대와 달리 주요 기업인이 모두 배제된 것에 실망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노력하겠다는 여당의 말만 믿고 투자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호황에 대한 기대가 됐든, 여당의 규제 개선 약속이 됐든 미래에 대한 확신 없이 기업은 투자 안 합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란으로 안보 리스크까지 높아지고 있으니….”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제안한 ‘뉴딜 구상’이 경제인 사면 ‘불발’과 당정 간 규제 개선 갈등으로 좌초할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여기에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앞당길 수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으로 안보 불안까지 확산되면서 투자 위험이 높아지지 않을까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 경제계, 뉴딜 비관론 확산

여당과 경제계는 △경제인 사면 △금리 동결 △조건 없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경영권 보호대책 마련 등을 전제로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합의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다.

경제계는 광복절 사면을 청원한 기업인의 대다수가 이번 광복절 사면에서 제외되자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1일 공식 논평을 통해 “경제5단체가 건의한 기업인들이 이번 사면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며 “특히 경제성장과 기업경영에 공이 큰 기업인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점은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크게 유감이다”라는 단 한 줄의 논평을 냈다. 더는 무슨 말이 필요하냐는 반응이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경제인 사면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검토됐어야 한다”며 “부정한 돈을 받은 정치인은 사면하고 관행에 희생된 기업인은 사면하지 않는 것은 형평을 잃은 지나친 처사”라고 비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청와대와 사전 협의 없이 ‘뉴딜 구상’을 들고 나온 여당 지도부에 대한 청와대의 보복으로 경제인 사면이 축소됐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출총제의 대안으로 ‘순환출자 금지’를 추진 중이다. 순환출자가 금지되면 주요 그룹은 계열사 지분을 처분해야 해 지배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 출총제를 폐지할 경우 14조 원을 새로 투자할 수 있다는 재계의 목소리는 공허해지고 있다.

○ 여당 입법권 현실성 있나

김 의장은 9일 전경련과의 간담회에서 “여당이 갖고 있는 입법권을 토대로 재계의 규제 개선 요구를 대폭 수용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협의를 거치지 않고 발표했다”며 불만을 표시했고 여당 내 ‘친노(親盧)세력’까지 “서민 살리기가 아니라 재벌 살리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재계는 김 의장이 말한 ‘입법권’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다른 경제단체 임원은 “여당이 규제 개선의 전권(全權)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로 재계와의 협상에 나선 것은 다소 무책임한 것”이라며 “사전에 청와대, 정부부처, 당내 반대세력과 조율을 마쳤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김 의장과 주요 그룹 총수들의 단독 개별 회동도 재검토되는 분위기다. 한 4대 그룹 임원은 “현 시점에서 여당 대표를 만나는 것이 적절한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 투자 리스크 키우는 전시작전권 환수 논란

노 대통령의 전시작전권 조기 환수 발언과 관련해서도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늘지 않은 채 내국인의 해외직접투자는 급증할 정도로 투자 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전시작전권 환수 논란이 투자 위험을 더욱 높였다는 지적이다.

한 중견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남북 대치 상황에서 국내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의 안보 공조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며 “국내외 기업들은 한국의 자위력(自衛力)이 아니라 미군 주둔으로 인한 한반도 안보환경의 안정을 보고 투자한다”고 강조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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