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기술 뒷문으로 줄줄 샌다

  • 입력 2006년 6월 1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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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품업체에서 생산부장으로 일하던 A 씨. 그는 회사를 그만둔 뒤 이 회사가 납품하던 중견 의료기기 제조업체 연구원으로 옮겨갔다. A 씨는 전 직장에서 병역특례요원으로 일하던 B 씨에게 “우리 회사에 취직시켜 주겠다”며 접근해 의료기기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자료들을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취업 제안에 솔깃해진 B 씨는 핵심 재료의 현미경사진을 촬영해 컴퓨터 파일 등과 함께 10여 차례 A 씨의 e메일로 보냈다. A 씨가 받은 기술은 B 씨의 회사가 7년간 약 40억 원을 투입해 개발한 기술. 이 사실은 곧 검찰에 적발됐고 두 사람은 모두 지난달 초 구속됐다. 대기업 간에 주로 발생하는 산업스파이 사건이 최근 중소기업에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인원이나 자금의 한계로 대응이 늦어 치명적인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천태만상’ 기술 유출 사례

#1(전직 간부 경쟁사 이직)

중소기업 C사의 부사장 K 씨는 회사 처우에 불만을 품고 경쟁사로 직장을 옮기면서 C사의 제조 공법 기술을 새 회사에 넘겨줬다. C사는 이 사건으로 1100억 원의 피해를 보았다.

#2(현직 직원 매수)

벤처기업 D사는 30억 원을 투자해 반도체 성능측정기 개발에 성공했다. 경쟁사는 D사의 한 간부에게 “거액의 주식과 현금을 주겠다”고 제안해 설계도면을 모두 빼돌렸다.

지난해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진흥공단은 벤처기업, 수출중소기업 등을 상대로 기술 유출 경험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였다.

조사된 사례를 보면 현직 직원을 매수하는 전형적인 방법을 비롯해 높은 연봉과 스톡옵션을 제시해 경쟁사 임원을 빼가는 경우, 투자를 미끼로 기술 제공을 요구하는 경우 등 그 유형도 매우 다양하다.

해외업체에 핵심 기술을 뺏길 수 있는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한 국내 인터넷 솔루션 개발업체 사장은 해외에서 개최된 포럼에 참석했을 때 한 외국인이 “미국 대학원생인데 연구에 참고하겠으니 기술을 알려 달라”고 접근했다. 의심스러워 확인해 보니 이 외국인은 미국 경쟁업체의 엔지니어였다.

○중기청 “보안시스템 구축 지원”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03년 이후 적발된 불법기술 유출사건은 모두 67건. 올해만 해도 4월까지 6건에 피해예방액(피해를 보았을 경우 손실액)이 4조1000억 원이다.

특히 중소기업은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김일호 중소기업청 경영정보화혁신팀장은 “기술 유출에 대해 대부분의 기업이 당장의 매출에 영향이 없다는 이유로 무관심하다가 나중에야 ‘아차’ 하며 놀라곤 한다”고 말했다.

중기청은 보안관리 규정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이 전체의 30%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직원들과의 각종 계약에서 비밀 유출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등 관리 규정을 수립하고 보안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중기청은 기업들을 상대로 보안시스템 구축 지원 사업을 벌이기로 하고 1일부터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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