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체 R&D로 허약체질 고친다

  • 입력 2006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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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국내 제약회사의 핵심 부서는 단연 영업부다. 회사에서 ‘잘나간다’는 말을 들으려면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영업을 해 봐야 한다.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금 꽤나 덩치 있는 제약사들도 초창기에는 조그만 의약품 수입상이거나 ‘약국 크기의 소규모 점포’에 지나지 않았다. 규모가 영세하다 보니 수십억, 수백억 원의 연구개발(R&D) 투자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600여 개나 되는 고만고만한 제약업체들은 그저 구하기 쉬운 약재에 보편적인 기술로 남들도 다 만드는 의약품만 생산해 왔다. 전형적인 ‘다(多)품종 소량생산’ 구조다. 오랫동안 고착된 이런 제약업계의 풍토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 R&D 출신 CEO의 도약

우선 연구소 출신 CEO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20, 30년 경력의 ‘영업통 CEO’가 대부분이던 제약업계의 경영층 인맥 구조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

대웅제약은 최근 이종욱 전 유한화학 사장을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신임 이 대표이사는 30년간 유한양행에 몸담으면서 중앙연구소장까지 지냈다.

대웅제약은 “급변하는 영업 환경에서 R&D 역량을 한 단계 도약시킬 토대를 마련한다는 의미”라고 영입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선임된 LG생명과학 김인철 사장은 국내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신약 ‘팩티브’ 개발에 참여한 경력을 갖고 있다. 미국 듀크대 메디컬센터와 글락소(현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미국 연구소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R&D 출신 CEO들은 신약이나 신제품을 개발한 공로로 회사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구소에서만 20년 넘게 경력을 쌓은 태평양제약 이우영 사장은 관절염 치료제 ‘케토톱’ 개발의 1등 공신이다. 2004년 선임된 보령제약 김상린 사장도 중앙연구소장 시절 ‘겔포스엠’ 개발의 주역이다. 동아제약 김원배 사장, 종근당 김정우 사장도 의약품 연구에 잔뼈가 굵은 R&D 출신 CEO들이다.

○ 아직은 갈 길 먼 제약업계 R&D

‘약장수’에서 연구기업으로의 변신은 시설투자 면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말 경기 용인시에 첨단 연구센터를 준공한 데 이어 이달에는 충북 청원군에 대규모 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중외제약도 이달 세계 최대 규모의 수액제(링거액) 공장을 새로 지었다.

인력 구조의 변화도 눈에 띈다.

영진약품의 경우 영업사원은 4월 현재 2000년에 비해 20% 늘었지만 연구원은 같은 기간 80% 증가했다.

CJ투자증권 정재원 연구원은 “연구개발이 아닌 복제약(카피약) 위주의 사업 구조가 그동안 국내 제약산업의 리스크로 작용했다”며 “의약분업 이후 R&D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사의 이런 움직임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향후 다국적 제약사와의 본격적인 경쟁이 불가피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국내 제약사의 R&D 투자액은 매출액 대비 4∼5% 수준으로 선진국 제약회사의 매출 대비 10∼15%에 아직 훨씬 못 미친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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