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억 수출에 20억 적자”…어느 우량中企의 환율쇼크

  • 입력 2006년 4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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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도 너무 떨어지네”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930원대로 떨어진 24일 서울 종로구 공평동 SC제일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여성 딜러가 모니터를 지켜보며 주문을 내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 종가인 939.8원은 1997년 10월 24일(929.5원)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전영한 기자
“떨어져도 너무 떨어지네”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930원대로 떨어진 24일 서울 종로구 공평동 SC제일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여성 딜러가 모니터를 지켜보며 주문을 내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 종가인 939.8원은 1997년 10월 24일(929.5원)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전영한 기자
“지금은 흑자를 내기 위해 공장을 돌리는 게 아니라 공장 문을 닫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마지못해 거래를 하는 겁니다.”

경기 용인시에 있는 휴대전화 외장부품업체 U사의 홍모 이사는 “수출 마진이 4∼5%인데 최근 2년 동안 달러당 원화 환율이 15%나 떨어졌으니 견뎌 낼 장사가 있겠느냐”며 체념한 표정이었다.

미국과 일본에 휴대전화 케이스 등을 수출하는 U사는 연간 매출이 500억∼600억 원인 중견 제조업체. 2002년 금형회사를 흡수합병하면서 2004년까지 연평균 800%의 폭발적인 성장을 해 온 알짜 중소기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직 하락하는 원-달러 환율(원화 가치 상승)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지난해 전년 대비 매출이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2004년 100억 원이었던 영업이익도 10억 원으로 뚝 떨어졌다. 올해 1분기(1∼3월) 결산에서는 15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도 20억 원의 적자를 냈다.

홍 이사는 “환율이 웬만큼 떨어져야 대책도 세울 텐데 지금은 ‘전망’이라는 말조차 무색할 지경”이라며 “작년까지는 금융당국에 항의 전화라도 했지만 지금은 자포자기 상태”라고 말했다.

원화 강세의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기업은 U사만이 아니다.

한국무역협회가 2월 대기업 34개, 중소기업 822개 등 856개 수출기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평균 손익분기점 환율은 중소기업 983.3원, 대기업 973.2원이었다. 환율이 이보다 밑으로 떨어지면 수출을 하고도 적자를 본다는 의미다.

특히 환율이 940원 밑으로 떨어졌을 때 마진을 남길 수 있는 중소기업은 13.0%, 대기업은 14.7%에 불과했다. 24일 원-달러 환율 940원 선이 허물어졌으므로 이 조사에 따르면 기업 100개 중 90개 가까이는 적자 상태로 들어선 셈이다.

기업들이 더 부담으로 느끼는 것은 엔화나 위안화 등 다른 아시아 통화에 비해 원화 가치가 유독 강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엔화당 원화 환율 역시 2004년까지는 100엔당 1000원대를 유지했지만 지난달 말에는 831.1원까지 하락했다. 원화가 달러화뿐 아니라 엔화에 대해서도 강세를 보이는 것이다.

원-엔 환율 하락은 특히 중소기업에 직격탄이다. 국내 중소기업의 대일(對日) 수출 비중이 50.4%에 이르기 때문이다.

일본에 낚싯대를 수출하는 K사의 김모 사장은 “그동안 벌어 놓은 돈으로 적자를 메우고 있지만 손실을 많이 본 상태여서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인 사이에서는 정부와 연구기관의 안이한 환율 전망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산업연구원(KIET)과 한국금융연구원 등이 작년 말 전망한 올해 원-달러 평균 환율은 1000원대였다. 가장 비관적인 전망이 모 민간경제연구소가 예측한 990원이었을 정도.

김 사장은 “환율이 960원 선까지 떨어졌을 때도 금융당국과 정부는 환율이 곧 안정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만 했다”면서 “선물환이나 환변동보험 가입을 미뤘다가 낭패만 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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