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의 궤변 “외환銀 매각으로 금융허브에 기여”

  • 입력 2006년 4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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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펀드의 존 그레이켄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엘리스 쇼트 부회장(왼쪽)이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3빌딩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한쪽에서는 외환은행 노조원들이 피켓시위를 벌였다. 김동주 기자
론스타 펀드의 존 그레이켄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엘리스 쇼트 부회장(왼쪽)이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3빌딩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한쪽에서는 외환은행 노조원들이 피켓시위를 벌였다. 김동주 기자
같은 장소에 같은 사람이 섰다. 하지만 표정과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빌딩 체리룸. 지난달 23일 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이 외환은행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국민은행을 선정했다는 발표를 한 자리다.

당시 쇼트 부회장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행사장에는 박수와 축하가 넘쳤다.

그러나 채 한 달이 안 된 19일 같은 장소에 선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과 쇼트 부회장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지난달 쇼트 부회장 앞에 놓였던 축하의 꽃다발은 외환은행 노조의 시위 피켓으로 바뀌었다. 내용도 섬뜩했다. ‘대한민국 우롱하는 론스타를 박살내자.’

쇼트 부회장은 기자회견이 진행된 1시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1991년 34세 때 론스타를 설립한 그레이켄 회장만이 말을 했다.

그는 ‘지구를 한 바퀴 돌면 수십억 달러를 모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펀딩(자금 모집)의 달인’으로 통한다. 하지만 그 또한 날이 선 질문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레이켄 회장은 준비한 원고를 읽는 것으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첫 마디는 론스타 펀드가 ‘건전한’ 투자자가 맡긴 돈으로 구성된 기관투자가라는 것. 투기세력이라는 인상을 씻고자 하는 의도가 역력했다.

한국에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내고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도망간다는 비판을 의식한 해명이 뒤를 이었다.

그는 “세금을 내야 한다면 모두 낼 것이며 이를 위해 7250억 원을 한국의 은행에 예치할 계획”이라며 “1000억 원의 사회공헌기금을 별도로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과거 있었던 탈세 논란 등은 모두 스티븐 리(해외 도피 중)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개인 비리로 돌렸다. 그레이켄 회장은 론스타가 스티븐 리를 형사고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원고를 다 읽고난 뒤 질문이 시작되자 그레이켄 회장은 쩔쩔매기 시작했다.

이날 한덕수(韓悳洙) 경제부총리는 동국포럼 주최 강연에서 “론스타의 1000억 원 기부 제안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며 “검찰 수사 및 감사원 감사 등은 그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 부총리의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기부금은 한국 국민에 대한 순수한 감사의 표시로 다른 동기는 없다”고 간단히 답했다.

한국을 아시아 금융허브로 만드는 데 공헌하겠다더니 매각 차익만 올리고 도망가려는 게 아니냐는 ‘원색적인’ 질문도 나왔다.

그레이켄 회장은 “한국경제가 빨리 회복돼 예상보다 외환은행 재매각 시기가 빨라졌을 뿐”이라며 “외환은행 매각으로 한국에 우량 은행이 생긴다면 그게 한국을 아시아 금융허브로 만드는 것 아니겠느냐”는 논리를 폈다.

외환은행 매각 관련 수사의 핵심이 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조작 문제에 대해서는 “BIS 비율 산정에 론스타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레이켄 회장과 쇼트 부회장은 문답이 끝나자 탁자 위의 물을 들이켜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회견장을 나서는 그들의 등 뒤로 “투기자본 물러가라”는 외환은행 노조원들의 구호가 따라붙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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