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대車 만든 ‘카리스마 경영’ 빛만큼 컸던 그림자

  • 입력 2006년 4월 13일 0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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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우리 회사의 경영이 시스템 측면에서 잘 정비돼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장수가 앞서 나가면 병사들이 뒤를 따르는 옛날 군대와 비슷합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임원 A 씨의 최근 고백이다. 어느 정도 과장이 섞여 있을 수는 있지만 이 그룹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엄살’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정몽구(MK) 회장의 독특한 경영 스타일은 최근 몇 년간 현대차그룹의 급성장을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정 회장이 없는 현대차를 상상하기 힘들다는 약점이 생겼다. 이른바 ‘MK식 경영’의 빛에 가려졌던 그늘이 검찰 수사를 계기로 드러난 것이다.

○ 급성장 이끈 ‘행동하는 경영’

정 회장은 1999년 3월 숙부인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에게서 현대차의 경영권을 넘겨받은 뒤 숨 가쁘게 달려와 고속 성장을 이뤄 냈다.

급성장의 원동력은 그가 직접 주도하고 강조한 ‘품질 경영’과 ‘현장 경영’이었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이 철저한 현대차의 기업문화에서 정 회장의 의지는 곧 그룹 전체의 실천으로 이어졌다.

컨설팅업체 액센추어의 정주영 상무는 “현대차의 품질이 2000년 이후 급상승한 데 대해 외국 자동차 업체들은 놀라워했다”며 “그들은 현대차의 품질 향상에 ‘특별한 무언가’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 업체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특별한 무엇’은 바로 정 회장의 강력한 카리스마”라고 덧붙였다.

오너가 강조한 것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뤄 내는 현대차그룹의 독특한 문화가 빠른 품질 향상을 가능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그룹의 연간 자동차 판매량은 1999년 225만 대에서 지난해에는 5개 해외공장을 포함해 354만 대로 급증했다. 정 명예회장이 현대차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난 1999년 3월 2일 1만7300원이었던 현대차의 주가는 12일 현재 8만5000원이 됐다. 같은 기간 종합주가지수가 533에서 1383으로 2.5배 오른 데 비해 현대차 주가는 5배 이상 올랐다.

○ 회장에게 노(NO)라고 못한 후유증

기아차 전직 임원 B 씨는 “기아차가 현대차에 인수된 초기에 정 회장을 중심으로 왕국처럼 돌아가는 현대차의 기업문화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잘못된 결정이라도 감히 정 회장에게 ‘노’라고 말하지 못했다”며 “대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를 해내려는 게 현대차의 정서”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한 임원은 “리스크가 있는 사업의 시행 여부나 시기는 대부분 정 회장이 최종 결정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만큼 정 회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뜻이다.

이런 방식은 그룹이 잘나갈 때는 높은 효율성을 발휘했다. 그러나 위기에 빠지자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18일로 예정된 현대차 베이징 제2공장 기공식이 연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이 참석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기아차 미국 공장 기공식은 이미 연기됐고 현대차 체코 공장 계약식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검찰 수사의 계기가 된 ‘내부 제보’도 정 회장의 경영 방식이 불러온 부작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깜짝 놀랄 만한 ‘발탁 인사’를 선호하는 스타일이 그룹 내 파벌을 형성했고 파벌 싸움에서 밀린 인사의 불만이 검찰 제보로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룹 관계자는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업문화라면 지금처럼 걱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특히 최근 벌여 놓은 사업이 많아 더 불안하다”고 말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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