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윗선 ‘6·16% 보고서’ 지시한듯

  • 입력 2006년 4월 11일 03시 03분


코멘트
박순풍-전용준씨 구속 수감 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 매각 실무 책임자였던 전용준 씨(오른쪽)와 전 씨에게 2억 원을 건넨 매각 자문사 엘리어트홀딩스 대표 박순풍 씨가 10일 구속영장이 발부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미옥  기자
박순풍-전용준씨 구속 수감 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 매각 실무 책임자였던 전용준 씨(오른쪽)와 전 씨에게 2억 원을 건넨 매각 자문사 엘리어트홀딩스 대표 박순풍 씨가 10일 구속영장이 발부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미옥 기자
《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조작 의혹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 BIS비율이 의도적으로 낮춰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결정적 근거로 작용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처럼 BIS비율을 낮춘 보고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작성됐고, 누가 조작을 지시했고, 무엇이 근거로 제시됐는지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검찰과 감사원은 이런 점에 초점을 맞추며 전방위로 조사를 하고 있어 그 실체와 배후인물이 드러날지 주목된다.》

○ BIS비율 6.16% 어떻게 나왔나

2003년 7월 15일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모건스탠리 외환은행 등의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대책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강원(李康源) 당시 외환은행장은 “론스타의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면 연말 BIS비율이 5.4%로 떨어질 수 있다”며 정부 측에 론스타의 은행 인수 승인을 요청했다.

5.4%는 외환은행이 자체 추정한 수치로 매우 비관적인 상황을 가정한 것이었다. 금감위는 곧바로 금융감독원 은행검사1국에 외환은행의 경영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금감원은 21일 외환은행 허모(사망) 차장이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 팩스 5장을 받았다. 여기에는 2003년 은행의 부실자산이 1조 원 또는 1조7000억 원일 경우와 론스타가 1조 원을 투자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 등 4가지 상황에 따른 BIS비율 추정치가 담겨 있었다.

은행의 부실자산이 1조7000억 원, 론스타의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된다면 연말 BIS비율은 6.16%로 떨어질 수 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 조금씩 벗겨지는 팩스의 진실

지금까지는 모든 사람이 의문의 팩스를 사망한 허 차장이 보냈다며 그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감사원은 10일 “당시 금감원 이곤학 수석검사역이 내부적으로 외환은행 연말 BIS비율 추정치 9.14%를 갖고 있었는데 국장선의 지시로 외환은행 허모 차장이 보내온 자료를 썼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은행검사1국은 이미 5, 6월 자체 검사를 통해 외환은행의 연말 BIS비율을 각각 8.44%, 9.14%로 추정했으며 6.16%는 이보다 훨씬 낮은 수치였다.

이 수석검사역은 금감원의 내부 추정치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백재흠 은행검사1국장의 지시에 따라 외환은행이 보내온 훨씬 낮은 추정치를 바탕으로 25일 보고서를 만들어 금감위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금감위는 이 보고서를 근거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했다. 은행의 안전성 평가 기준인 BIS비율이 8%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부실금융기관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감원 국장이 스스로 금감원의 내부 추정치와는 전혀 다르고 제대로 검증되지도 않은 외환은행의 내부 추정치를 사용하라고 지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백 국장보다 더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왔을 가능성이 높아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면 금감위 고위 관계자들의 조사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 외환은행은 어느 선까지 알고 있었나

외환은행 허 차장이 금감원에 보낸 ‘의문의 팩스’ 5장에 대해 지금까지 다른 사람은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해 왔다. 외환은행이 부실금융기관으로 간주된 결정적인 단서였지만 허 차장은 지난해 8월 지병으로 사망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격언이 들어맞는 상황이다.

하지만 채동욱(蔡東旭)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은 “전 씨(전용준 당시 외환은행 경영전략부장)가 (BIS비율 조작) 책임을 허 차장에게만 미루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전 씨가 팩스의 작성 경위와 근거, 금감원 보고 경로 등을 알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전 씨는 당시 외환은행 내에서 매각 실무 책임자로 허 차장의 직속상사였으며 이강원 당시 외환은행장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팩스를 보낸 사실과 내용을 알고 있었고 은행 경영진에까지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이 전 행장은 “실무자가 만든 것이어서 모르겠다”며 계속 부인하고 있다.

○ 퇴임 후 자문료 받은 것은 정상인가

론스타의 인수가 마무리되자 이 전 행장은 2003년 11월 외환은행과 3년간의 경영고문 계약을 했다. 그는 2004년 5월 굿모닝신한증권 사장으로 선임됐지만 잔여 계약기간의 자문료에 해당하는 7억1050만 원을 받았다. 또 론스타의 투자 유치를 성사시킨 대가로 성과급 7억 원을 별도로 받았다.

이달용(李達鏞) 당시 부행장도 이 전 행장과 같은 날 3년간 고문계약을 했으나 2004년 4월 말 퇴직하면서 나머지 기간의 자문료 8억7500만 원을 받았다.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도 부여돼 이 전 행장은 20만 주, 이 전 부행장은 36만 주, 전 전 부장은 6만 주를 각각 받았다.

감사원은 이러한 성과급과 경영자문료, 스톡옵션 등이 정상적인 것인지 아니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적극 협조한 대가인지를 조사하고 있다.

김두영 기자 nirvana1@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