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오비이락 모금’ 논란

  • 입력 2006년 4월 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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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A사의 대외업무 담당 임원 K 씨는 요즘 ‘시민단체’의 후원행사에 참석하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참여연대가 사무실 이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후원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을 보내오자 경영진이 “가급적 성의를 표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4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참여연대 보금자리 마련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를 열기로 하고 최근 850개 상장기업과 개인 3500명에게 후원 약정서가 담긴 초청장을 보낸 것으로 3일 밝혀졌다.

이 단체는 기존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무실을 올 하반기 다른 곳으로 옮길 예정이며 가급적 건물을 구입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에도 창립기념일에 맞춰 후원회를 열었던 참여연대는 계좌당 후원금 상한액을 작년 300만 원에서 올해 500만 원으로 올렸다.

특히 참여연대가 초청장을 보낸 기업 가운데는 이 단체가 6일 발표하기로 한 편법 경영권 승계 실태조사 대상 38개 그룹이 대부분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K 씨는 “대기업을 마치 ‘범죄 집단’으로까지 폄훼하는 참여연대에 돈을 대주고 싶지는 않지만 정부 핵심 인사들과 ‘코드’가 맞고 영향력이 큰 현실적 힘을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참여연대의 후원 요청에 대해 A사 외에도 상당수 기업들이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지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후원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기업에 가장 민감한 지배구조와 경영권 승계에 대해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해 온 참여연대의 후원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대기업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이송희(李松熙) 참여연대 총무팀장은 “매년 창립기념일에 후원행사를 열면서 비슷한 형태로 기업에도 후원을 요청해 왔다”며 “경영권 승계조사 결과 발표와 후원행사를 연관짓는 것은 무리한 비약”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일이 아니라도 기업들은 시민단체들의 다양한 후원 요청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환경단체를 지원하는 재단법인 환경재단이 기업들에 공식적으로 금액을 명시하면서까지 후원금을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당시 이 단체는 최고급 호텔에서 후원행사를 열면서 ‘어린이 환경기금’ 명목으로 주요 기업에 100만∼1000만 원의 후원금을 요청했다. 환경운동연합 대표 출신인 최열(崔冽) 환경재단 상임이사 명의의 공문까지 보내 500만 원, 300만 원 등 후원금액을 명기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기업 및 임원 명의로 후원금을 내는 것 외에도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 인사가 관여하는 대학의 특정 프로그램에 수백만 원의 학비를 들여 임직원을 파견하기도 한다”면서 “주요 인사들은 고위 임원들이 ‘특별관리’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특히 현 정부 출범 후 시민단체 관계자가 청와대 등 권력의 핵심에 진출하는 일이 늘면서 일부 시민단체로부터 여러 형태의 금전적 요구가 들어오고 있다”면서 “후원을 할 수도 있지만 앞에서는 반(反)기업정서를 조장하면서 뒤로 손을 벌리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경실련 사무총장 출신인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기업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운영비의 절반 이상을 기업 및 임원 후원금과 광고비로 조달하는 일부 단체의 이중적 태도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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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사무실 이전 비용 마련을 위한 후원 행사를 열면서 국내 대기업에 후원금을 요청해 물의를 빚고 있다. 4일 열리는 ‘후원의 밤’ 행사를 안내하는 참여연대 홈페이지 화면과 기업 등에 보낸 후원금 약정서.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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