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손 → 시장의 손’ 외환정책 틀이 바뀐다

  • 입력 2006년 3월 2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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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상하다…. 한국은행이 안 보이네.”

외환딜러 A 씨는 얼마 전부터 외환시장에서 특이한 변화를 발견했다.

연초만 해도 달러당 원화 환율이 급격히 떨어지면 한국은행이 어김없이 시장에서 직접 달러화를 사들였는데 그러한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20일 원-달러 환율이 960원대로 밀렸는데도 한은의 달러화 매수 징후는 발견할 수 없었다.

정부 외환정책의 근본 틀이 바뀌고 있다. 환율 오름세나 내림세가 비정상적으로 빠르지 않으면 직접 달러화를 대규모로 사들이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그 대신 개인과 기관투자가가 해외 부동산,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에 적극 투자하도록 유도해 달러를 해외로 내보내는 정책을 선택했다.

경상수지 흑자로 밀려들어오는 달러화를 일본처럼 국내 개인과 기업의 해외투자를 통해 해소하겠다는 전략이다.

○정부의 직접 개입은 사실상 끝나

연초 원-달러 환율의 심리적 지지선이었던 1000원이 무너지자 한은은 적극적으로 달러화를 사들이며 환율방어에 나섰다. 하루에 무려 20억 달러어치를 매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2월 들어 태도가 싹 바뀌었다. 환율이 960원까지 내려가도 전혀 반응이 없다.

이는 한은의 외환보유 액에서도 나타난다. 1월 말 외환보유액은 2169억 달러로 작년 12월 말에 비해 65억 달러나 늘었다. 그만큼 적극적으로 달러화를 사들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2월 말 외환보유액은 2159억 달러로 1월 말에 비해 10억 달러 줄었다.

외환위기 이후 거의 매달 증가해 오던 외환보유액이 줄었다는 것은 한은이 환율방어에 나서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적극적인 시장개입으로 목표 환율을 지켜온 외환정책의 기본 틀이 바뀐 것이다.

○‘외평채 발행’ 정부 손실 급증

정부는 외국환평형기금 채권(이하 외평채)을 발행해 조달한 원화로 달러화를 산다. 그리고 이 달러화로 다시 미국 국채(TB)를 산다.

하지만 환율방어를 위한 외평채 발행 잔액이 2001년 14조 원에서 2004년 말 51조2000억 원으로 급증하면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은은 달러화를 1100∼1200원대에 대량 매입했지만 최근 960∼970원대로 떨어져 막대한 평가손실을 입었다. 또 국내 외평채 금리가 미국 국채 금리보다 높기 때문에 금리 차이만큼의 손실도 발생한다.

외국환평형기금의 손실 규모는 △2002년 1조7735억 원 △2003년 5219억 원 △2004년 10조2205억 원이며 2005년에도 수조 원대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환율은 시장에”… 정부 인식 바꿔

과거 정부는 목표환율을 정해 놓고 이를 맞추기 위해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했다. 외환위기 이후 외환보유액을 늘리려면 ‘경상수지 흑자’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원-달러 환율을 높게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시장에서 달러화의 수요-공급 상황에 비춰 볼 때 원-달러 환율이 너무 높다는 의견이 많은데도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또 2000억 달러가 넘는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감안할 때 너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의 경험을 따라간다

일본은 전형적인 수출주도형 국가다. 하지만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달러당 환율이 100엔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자본수지 적자 때문이다. 수출로 달러화를 벌어들여도 주식, 부동산 등 해외투자로 달러화가 밖으로 나갔다.

일본은행은 2004년 3월 이후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를 매입하는 직접개입을 중단했다.

한국은 경제구조가 비슷한 일본을 외환정책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재정경제부는 지난달 개인이 주거 목적으로 해외부동산을 사는 것을 완전 허용했다. 앞으로는 개인과 기업의 투자용 부동산 취득도 허용할 예정이다. 일본처럼 자본수지 적자를 크게 늘리려는 조치다.

권태균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은 “장기적으로 일본처럼 경상수지 흑자를 자본수지 적자로 해결하는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말한 바 있다.


김두영 기자 nirvana1@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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