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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했다. 요즘 SK㈜가 KT&G를 바라보는 심정이 꼭 이렇다.
SK㈜에는 약 2년 전 외국계 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의 경영권 위협으로 벼랑 끝에 몰린 악몽이 남아 있다.
미국의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 씨가 경영 참여를 선언하면서 현실이 된 KT&G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우려는 ‘SK 사태’와 꼭 닮았다.
그렇다면 SK㈜는 어떻게 소버린을 물리쳤을까.
○여론을 잡아라
소버린은 2003년 3∼4월에 SK㈜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14.99%의 지분으로 최대 주주 자리에 오른 뒤부터는 사외이사 추천,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에 대한 출자 전환 반대, 최태원 회장 퇴진 등 사사건건 ‘감 놔라, 배 놔라’했다.
당시 SK㈜에서 방패 역할을 한 곳은 홍보팀, 기업설명회(IR)팀, 법무팀의 ‘삼총사’.
SK㈜ 측은 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외 여론의 지지를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홍보팀은 SK㈜가 국가 기간산업(에너지)이라는 점과 국민경제적인 폐해를 강조했다. 아울러 종업원과 협력업체의 단결 및 위기극복 의지를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SK㈜의 한 관계자는 “울산시민들의 자발적인 SK㈜ 주식 사기 운동은 비록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상징성이 갖는 의미는 컸다”고 말했다.
국내 언론도 SK㈜에 우호적이었다. 영국의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가 삼성전자의 SK㈜ 지분 매입과 울산시민 주식 사기 운동에 대해 ‘국수주의’니 ‘민족주의’니 하며 비판했지만 오히려 소버린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외국인 vs 국내인’보다
‘장기 vs 단기 투자자’의 싸움
소버린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에 SK㈜는 사외이사 비율을 70%까지 높이고 투명경영위원회를 설립하는 지배구조 개선 로드맵을 발표해 시장의 호응을 얻었다.
IR팀은 외국인투자가들에게 소버린의 실체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췄다. SK㈜에서 외국인의 지분이 절반을 넘었기 때문에 소버린이 원하는 구도는 외국인 대 내국인. 하지만 SK㈜는 장기 대 단기투자자로 구별했다.
국내건 외국이건 단기성 투기자본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나갔다.
법무팀은 소버린 측 요구의 적법성 여부 검토와 함께 단계별 시나리오를 마련해 대비했다. 법무팀 관계자는 “주주권을 이용한 이사 해임 청구 등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서 각각의 대응 방안을 짜 놨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인 대안연대의 정승일(경제학박사) 정책위원은 “SK의 경우에는 국내 기관투자가와 삼성전자 등 우호 지분의 도움이 컸다”며 “KT&G는 전에도 영국계 투자회사인 TCI로부터 경영권 위협을 받았는데 그동안 방어책을 마련하지 않아 이번 일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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