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조폐창, 5000원권 바탕그림 인쇄 들어가

  • 입력 2005년 11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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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이해성 조폐공사 사장이 7일 경북 경산시 경산조폐창에서 바탕 그림이 찍힌 새 5000원권 지폐 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지금보다 크기가 작아지고 위조 방지 장치가 강화된 새 5000원권은 내년 1월 중 시중에 유통된다. 경산=연합뉴스
박승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이해성 조폐공사 사장이 7일 경북 경산시 경산조폐창에서 바탕 그림이 찍힌 새 5000원권 지폐 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지금보다 크기가 작아지고 위조 방지 장치가 강화된 새 5000원권은 내년 1월 중 시중에 유통된다. 경산=연합뉴스
7일 오전 경북 경산시 갑제동 조폐공사 경산조폐창.

박승 한국은행 총재와 이해성 조폐공사 사장이 동시에 버튼을 누르자 지폐의 바탕 그림을 그리는 평판(平版)인쇄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부여조폐창에서 실어 온 전지(全紙)가 평판인쇄기에 빨려 들어간 지 10초 만에 바탕 그림 45개가 인쇄돼 나왔다.

크기와 디자인, 색상을 완전히 바꾼 새 5000원권 지폐가 나온 것은 23년 만이다.

이날 인쇄를 시작한 용지가 완벽한 지폐로 탈바꿈해 시중에 유통되는 때는 내년 1월. 지폐 제조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하기 때문이다. 통상 지폐 인쇄에서 한국은행 납품까지는 40여 일이 걸린다.

○ 5차례 인쇄와 8단계 공정을 거쳐

우선 인쇄기에 넣기 전에 전지를 특수 금고에서 열흘 이상 숙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용지의 습도를 조절하기 위해서다. 용지가 늘어나거나 줄어들면 정교한 인쇄가 불가능하다.

이날 시작된 공정은 충분히 숙성한 전지에 바탕 그림을 찍는 평판인쇄. 인쇄기를 빠져나온 지폐는 2, 3일 건조해 잉크를 완전히 말린 뒤 더욱 세밀한 공정에 들어간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색 변환 잉크로 뒷면에 ‘5000’이라는 숫자를 인쇄한 뒤 역시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시변각장치(OVD)를 붙인다. 다음엔 손으로 만졌을 때 볼록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생기도록 요판(凹版) 인쇄를 한다. 공정마다 2, 3일의 건조 시간이 필요하다.

다음은 검사. 인쇄 작업이 제대로 됐는지 ‘노타 체크’라고 불리는 기계가 고속으로 검사한다. 1999년 이 기계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직원들이 육안으로 일일이 검사했다.

조폐공사 정명국 홍보팀장은 “전문가 수준의 직원 100명이 하루 8시간 일하는 만큼의 작업을 기계 한 대가 8시간 만에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사를 통과한 제품에는 일련번호를 새겨 넣는다. 마지막으로 5000원권 45장이 인쇄된 전지를 가로 142mm, 세로 68mm 크기의 낱장으로 자른다. 이를 100장, 1000장, 1만 장 단위로 비닐 포장한 뒤 정해진 곳에 보관하는 것으로 작업이 끝난다.

○ “돈이 아니라 ‘물건’이에요”

경산조폐창을 찾으면서 한국은행 금고를 터는 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 ‘범죄의 재구성’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런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폐를 인쇄하는 작업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입구와 출구가 분리된 ‘환복장(換服場·옷을 갈아입는 곳)’에서 팬티만 입고 다른 옷은 모두 벗는다. 팬티 차림으로 검색대를 통과한 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청원경찰의 검색 과정을 또 거쳐야 한다. 청원경찰은 실탄이 장전된 총을 휴대하고 있다.

직원은 칩이 내장된 신분증을 사용해 자신이 출입할 수 있는 곳만 드나들 수 있다. 24시간 녹화되는 폐쇄회로(CC) TV도 곳곳에 빈틈없이 설치돼 있다. 이렇게 철저한 보안 때문일까. 직원들의 의식도 일반인과는 달랐다.

경산조폐창에 있는 자동판매기는 100원, 500원짜리 동전이 아니라 여기서만 쓰이는 150원짜리 코인을 넣어야 작동한다.

직원들은 공장에서 만드는 돈을 ‘물건’ 또는 ‘제품’이라고 부른다.

한 직원은 “돈을 물건으로만 생각한다”며 “공장 바깥에서 돈을 봐도 내가 맡고 있는 부분이 제대로 인쇄됐는지를 무의식적으로 살핀다”고 말했다.

완벽한 지폐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더 어려운 것은 불량품 관리.

완제품은 현금 수송차에 실어 보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불량품은 수량을 확인한 뒤 구멍을 뚫고 포장해 별도로 보관한다. 혹시 있을지 모를 확인 절차에 대비해 6개월∼1년 보관한 뒤 한은 관계자의 입회 아래 소각한다.

한은 김두경 발권국장은 “일정이 빠듯하지만 새 5000원짜리를 세뱃돈으로 줄 수 있도록 내년 설 연휴(1월 28∼30일) 전에 새 지폐를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산=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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