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데… ‘발병’난 FTA

  • 입력 2005년 10월 2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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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전략이 난관에 부닥쳤다.

정부가 FTA 전략의 핵심 목표로 삼은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일본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5대 교역 지역과의 협상이 줄줄이 지연되고 있다.

한일 FTA 협상은 작년 11월 6차협상 이후 잠정 중단됐다. 한미 FTA는 스크린쿼터 문제에 묶여 FTA를 추진할지조차 불투명하다. 정부가 올해 타결 목표를 세웠던 한-아세안 FTA 최종 협상도 최근 실패로 끝났다.

한중 FTA는 국내 농업 보호를 위해 한국이 협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칠레 싱가포르와 FTA를 맺으며 ‘워밍업’을 끝낸 한국은 올해 핵심 국가들과 FTA 협상에 나섰으나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한-아세안 FTA 협상 난항

14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아세안 FTA 최종 협상은 상품자유화의 폭과 농산물 문제에 걸려 타결에 실패했다.

품목 수 기준으로 90%의 상품을 자유화한다는 데는 양측의 이견이 없다.

한국은 품목 수뿐 아니라 교역금액 기준으로도 개방 폭을 90%로 정한다는 방침. 한국의 대(對)아세안 수출에서 주요 10개 공산품이 전체 수출액의 58%나 되기 때문이다. 품목 수 기준으로만 개방하면 아세안이 한국의 주요 공산품을 모두 자유화 대상에서 제외되는 ‘민감 품목’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제안에는 양측 간 교역금액에서 농산물 비중은 10% 남짓이어서 90%를 개방해도 국내 농업을 보호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한국은 또 민감 품목 수를 늘려 자유화 대상 농산물을 줄이자고 제안했다.

반면 아세안은 금액 기준의 개방 폭을 90%보다 크게 낮추고 민감 품목 수는 줄여야 한다는 태도다.

양측 간 공식 FTA 협상은 끝났다. 남은 기회는 다음 달 열릴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다. 그러나 APEC 기간에 극적으로 타결되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 “국제 역학 관계 이용해야”

중국은 올해 7월 아세안과 FTA를 발효시켰다. 여기에 한중 FTA가 체결되면 한국 중국 아세안을 묶는 거대 경제권이 형성된다.

FTA는 정치적 의미도 갖는다는 점에서 한국이 미국을 제쳐두고 중국과 먼저 FTA를 추진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미국과의 FTA는 추진할지도 알 수 없는 상태다. 정부는 “조속히 노력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할 뿐 미국이 전제조건으로 내건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해서는 부처 간 논의가 중단돼 있다.

일본과의 FTA 협상은 양국 당국자 간 감정 다툼으로까지 치달았다. 농산물 개방 폭에 대한 양국 간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은 채 협상 지연을 서로 상대방 탓으로 돌리고 있다.

법무법인 율촌의 정영진(鄭永珍) 통상전문 변호사는 “한국의 5대 교역국이 정치 경제적으로 얽혀 있는 점을 이용해 FTA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야 한다”며 “한-아세안 FTA가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아세안과 한국이 FTA를 맺어 거대 경제블록을 이루면 일본 미국 등이 한국과의 FTA 협상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한-아세안 FTA 협상에서 상품 자유화 규모를 놓고 산업자원부 농림부 등의 견해차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정부가 부처 간 이견 조율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의욕만 앞섰다는 비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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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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