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치, 신뢰 쌓는만큼 커져요

  • 입력 2005년 5월 20일 05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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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는 잃어버린 투자자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적절치 못한 기업설명(IR) 활동을 감안해 목표주가를 한 단계 낮춘다.”

지난주 현대증권 김장열 연구원은 휴대전화용 메모리 제조업체 EMLSI의 목표주가를 기존 2만6000∼3만 원에서 2만∼2만2000원으로 낮추면서 의미 있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회사는 지난달 말 투자자 및 애널리스트(기업분석가)와 여러 차례 모임을 가졌다. 하지만 실적악화 요인과 그 영향에 대해 솔직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을 문제 삼아 목표주가를 낮춘 것.

주주에게 신뢰를 잃은 대가로 기업 가치를 500억 원가량 줄여 평가한 셈이다.

○ 신뢰는 곧 돈이다

증시에서는 기업 가치에 큰 영향을 주는 무형자산으로 최고경영자(CEO)의 능력과 주주와의 신뢰를 꼽는다.

그동안 더 중요시 됐던 것은 CEO의 능력. ‘CEO 주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CEO의 능력은 기업 가치와 직결됐다.

최근에는 한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주주와의 신뢰’가 중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EMLSI의 1분기(1∼3월) 실적은 시가총액 수백억 원을 좌우할 만큼 나쁘지는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목표주가를 낮춘 김 연구원조차 “회사의 제품 개발능력은 여전하다”고 평가할 정도.

그러나 이 회사 주가는 실적발표 직후인 11일 하한가로 내려앉는 등 지난달 말 2만1000원대에서 최근 1만3000원대로 떨어졌다.

반대로 신뢰를 통해 가치를 높인 기업도 있다.

지난해 4월 한국전기초자는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최근 진출한 신규사업이 난관에 부닥쳤다”고 솔직히 공시해 투자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이 공시를 발표한 날 한국전기초자의 주가는 오히려 1.35% 상승했다.

올해 3월 영업직원이 회사자금 4억 원을 횡령하는 사고가 발생한 아가방은 사고를 감추기에 급급한 다른 기업과 달리 즉시 공시를 통해 사건 전모를 공개했다. 횡령 금액이 적어 공시할 의무조차 없는 사건을 솔직히 공개함으로써 주가 폭락을 막은 동시에 주주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 신뢰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면

하지만 ‘주주와의 신뢰’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기업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부터 “기업 매각을 적극 추진하겠다”면서 각종 낭설을 흘리다 결국 최근 증시에서 퇴출된 하우리가 대표적 사례.

수년 전부터 “조금만 기다리면 독일 철도청에 스마트카드를 납품한다”고 변죽을 올려 주가를 끌어올렸다가 끝내 수주가 무산돼 주가가 폭락했던 씨엔씨엔터프라이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초 700억 원대 매출이 2004년 목표라고 공시했던 K기업은 실제로는 지난해 매출이 30억 원에도 못 미쳐 ‘터무니없는 공수표 공시 남발’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거짓 공시나 뒤늦은 공시를 통해 중요한 사실을 ‘일단 감추고 보자’는 식으로 생각하는 기업이 여전히 많은 것도 문제. 2001년 이후 불성실공시로 증권선물거래소로부터 제재를 받은 기업은 증가 추세다. 지난해에는 불성실공시 기업이 엉터리 공시가 판을 쳤던 2000년 수준을 넘어섰다.

동부증권 장영수 연구원은 “주주와의 신뢰는 단순히 기업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항목이 아니라 기업 가치를 좌우하는 ‘돈’의 문제”라며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나가는 기업은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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