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내 여성 리더들 부상하고 있다

  • 입력 2005년 1월 13일 15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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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에서 여성들이 떠오르고 있다. 오랫동안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직장인의 별' 임원으로 승진하는 여성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검증된 '제 1세대 여성리더'들이다.

재계에서는 "앞으로 5년만 있으면 여성들의 약진에 무서운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전망도 나온다. 그에 따라 기업문화도 적지 않게 바뀔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기업에 불고 있는 변화의 조짐을 집중 분석해 본다.

"여성 임원으로 찾아주십시오. 기업문화를 바꿀 여성 리더가 필요해요."

헤드헌팅업체 유앤파트너즈 유순신 대표는 최근 임원을 스카우트 하려는 한 국내 주요 대기업으로부터 이런 요청을 받았다. 처음이 아니었다. 또 다른 대기업도 "되도록 여성이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해왔다.

여성들이 의사결정권을 지닌 기업의 '허리'로 속속 올라오고 있다. 최근 잇따라 발표되고 있는 주요 기업의 임원인사에서도 이런 모습이 두드러진다.

▽'유리천장' 깨지나=12일 삼성그룹의 임원인사에서는 기존 여성임원 3명의 직급이 높아졌고 부장급에서 새로 임원으로 승진한 여성도 3명에 이르렀다. 삼성SDI에서는 35년 만에 첫 여성 임원이 배출됐다. 이로써 삼성그룹의 여성임원은 총 14명으로 늘었다.

이에 앞서 LG그룹은 LG전자 류혜정 상무와 LG CNS 임수경 상무를 새로 임원으로 승진시켰다. 그룹 내 여성임원은 모두 9명.

SK그룹은 지난해 3월 SK텔레콤 윤송이 상무, 4월 SK 강선희 상무를 영입했다. 이 그룹에서 여성임원이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김미형 부사장은 올해 초 세계경제포럼(WEF)이 뽑은 차세대 리더 7명의 하나로 선정됐다. KT 이영희 상무보, 제일기획 최인아 상무도 관련업계의 '왕언니'로 꼽힌다.

금융권에는 국민은행 구안숙 부행장, 제일은행 김선주 상무, 삼성증권 이정숙 상무, 삼성카드 김은미 상무, 삼성화재 박현정 상무보 등이 포진해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강남, 분당 중 주요지점에 14명의 여성 지점장을 한꺼번에 발령내기도 했다.

외국계 기업에서 여성 임원의 활동도 활발하다.

컨설팅회사 엑센추어의 이지은 전무는 지난해 9월 첫 여성 파트너이자 36세 최연소 임원 타이틀을 땄다. 수입차 업계에서는 최근 볼보코리아 이향림 사장이 PAG코리아 대표까지 겸직했고 BMW코리아 김영은 이사는 상무로 승진했다.

바이엘코리아의 동물약품 공장장인 이영신 상무, 베인&컴퍼니의 부사장급 김연희 파트너,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박남희 이사도 여성중역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의 주역=삼성그룹 계열사의 한 임원은 최근 신입사원 연수과정에 참석했다가 여성들의 활약에 크게 놀랐다. 그는 "남자 놈들은 다 뭘 하고 있느냐. 이러다가는 나중에 회사에 여자들만 남겠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전문가들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활동을 최대한 키워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주희 연구위원은 "1인당 국민소득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 16개국의 평균 수준으로 올리려면 앞으로 10년간 300만명의 신규 인력이 필요하며 이는 여성인력의 성장 없이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의사결정권을 갖는 관리직급에서의 여성인력 진출은 기업의 수익 증대와도 관련이 있다.

미국 100대 기업 중 여성 관리직 비율이 높은 상위 10개 사는 동종(同種) 업종 평균과 비교해 약 12배의 주주 수익률을 낸 반면 하위 10개 사의 수익률은 0.4배에 그쳤다.

기업문화의 긍정적인 변화에 대한 기대도 높다. 삼성 LG그룹 등 국내 대기업과 주요 외국계 기업의 여성 임원들은 "의사결정권을 가진 여성이 늘어나면 기업의 투명성, 공정성, 다양성, 고객의 요구를 배려하는 21세기형 감성 경영 등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갈 길은 멀다=관리직 여성의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도 전체의 2%를 못 넘는다. 철강, 중공업, 조선 등 업종의 대기업에서는 아직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다.

한국여성개발원 양인숙 박사는 "여성임원의 탄생은 지금까지 친족, 혈연인사나 소수의 '스타' 발탁 형식이었다"며 "최근에야 늘어나기 시작한 여성 인력이 비중 있는 역할로 올라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산, 육아 및 가사 병행 등에 대한 제도적 문화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관리직에 오른 여성 상당수는 핵심에서 비껴난 부서에 배치돼 추가 승진이 쉽지 않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한국노동연구원 이 연구위원은 "제도적 지원과 함께 남성의 육아휴직이나 가사 분담이 자연스러워지는 등 경제, 사회적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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