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유 하나은행장 “국내-외국銀, 골프 프로-초보의 싸움”

  • 입력 2004년 12월 22일 17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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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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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유(金勝猷·62·사진) 하나은행장은 “국내 은행의 사람과 제도, 관행이 바뀌지 않으면 씨티은행 HSBC 등 외국계 은행에 국내 시장을 전부 내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행장은 21일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외국계 은행의 잇따른 진출로 경쟁의 승부처가 규모에서 질로 바뀌는 등 은행업 전반이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1965년 옛 한일은행에 입행해 내년이면 금융 인생 40년이다. 10년 후 한국의 금융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하는 걱정에 초조한 심정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1997년 2월부터 7년 10개월 동안 하나은행장을 맡은 그는 은행 자산을 8조7000억 원에서 93조4000억 원으로 키운 대표적인 ‘토종’ 은행장이다.

김 행장은 인터뷰 내내 얼굴을 붉히면서 외국계 은행의 공세에 대한 소회와 대응 전략을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그는 “지금까지 하나은행의 성장 동력은 인수합병(M&A)이었고 다른 국내 은행과의 덩치 경쟁이라면 지금이라도 추가 M&A를 해 이길 자신이 있다”며 “그러나 씨티은행 HSBC 등 외국계 은행이 진출하면서 ‘게임의 룰’이 질적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적인 은행과 국내 은행 간 경쟁을 ‘이제 막 실내연습장을 벗어난 골프 초보자와 프로 골프선수 간 게임’이라고 비유했다. “죽느냐 사느냐의 게임”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이 같은 위기의식은 기업을 보는 눈, 즉 위험관리 능력 면에서 현격한 차이를 좁히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씨티은행과 HSBC 등은 △200년 동안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 △전 세계적 영업망 △국내 은행보다 몇 단계 높은 신용등급 등을 바탕으로 월등한 위험관리 능력을 갖췄다는 게 김 행장의 평가.

“국내 은행들처럼 한 해 왕창 이익을 냈다가 이듬해 적자를 보는 식으로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다. 2, 3년 동안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5년 후면 현격한 차이가 생긴다.”

이처럼 축적한 역량과 대외 신인도 면에서 ‘게임이 안 되는’ 국내 은행들이 살아남으려면 “사람과 제도, 관행을 바꾸고 고객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정공법과 밀착경영으로 대응하겠다”고 김 행장은 강조했다.

그는 “하나은행은 향후 2, 3년 동안 무리한 덩치 키우기를 하지 않고 내부 역량 강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혀 내년 말부터 본격화될 외환은행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최근 씨티은행 연구에 몰두 중인 김 행장은 “한국씨티은행은 상당기간 덩치를 키우지 않고 국내 은행의 핵심 우량고객을 빼앗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한미은행이 씨티은행에 인수되자마자 각 은행의 내부 정보를 교환하는 모임에 불참할 정도로 냉정하고 무서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철용 기자 cy@donga.com

김승진 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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