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대출 돌다리도 두드려라”…경기침체로 부도기업 급증

  • 입력 2004년 12월 16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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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 무역센터 기업지점에서 중소기업 영업을 담당하는 K 차장은 거래업체를 방문할 때 안내데스크 직원의 표정, 우편물 함, 화장실 등을 빼놓지 않고 살펴본다. 우편물이 수북이 쌓여 있거나 화장실이 지저분하면 경영에 문제가 있는 기업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 직원 휴게실에 슬쩍 들어가 대화를 엿듣는 것은 기본이다.

한 시중은행 대출 담당자는 최근 거래업체가 공장을 옮겨 축하 화분을 들고 찾아갔지만 공장 입구에 간판이 없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장은 1개월도 안 돼 부도를 내고 야반도주했다.

그는 “예감이 안 좋을 때 바로 확인했어야 했는데 시기를 놓쳤다”며 안타까워했다.

은행들이 부실 여신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자 일선 여신심사 담당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조흥은행은 지난주 부실 대출과 관련해 직원 40여 명을 징계했다. 전결 한도를 초과한 금액을 본부에 알리지 않고 대출하거나, 한도까지 대출받은 기업에 대해 사장의 부인이나 친척 명의로 추가 대출해준 사례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황영기(黃永基) 우리은행장은 최근 월례조회에서 “대출할 때 제품 상태, 공장 가동 상태, 종업원 사기, 상환 능력 등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며 “대출 후에도 공장을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해당 기업의 경쟁업체까지 탐방하는 등 사후관리를 철저히 해 달라”고 강조했다.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면서 ‘신용위험 상시평가’ 대상 기업이 크게 늘었다.

신용위험 상시평가는 대출한 기업의 청산이나 구조조정 등을 결정하기 위해 채권 은행이 실시하는 것이다.

16일 금융계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올해 하반기(7∼12월) 1179개 기업을 신용위험 상시평가 대상으로 정해 경영위험, 재무위험, 현금흐름 등에 대한 평가 작업을 하고 있다.

이는 상반기(1∼6월) 1066개에 비해 10.6% 증가한 것이다.

상시평가 대상은 대출 500억 원 이상인 기업 전부와 여신이 일정 수준(20억∼50억 원)을 넘는 기업 가운데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이거나 외부감사에서 한정 이하 판정을 받은 기업 등이다. 또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정한 감시대상 기준에 해당하면 평가를 받게 된다.

은행권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2001년 말 155조 원에서 올해 11월말 242조 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연체율은 같은 기간 1.65%에서 2.8%로 높아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늘면서 기준에 해당되는 대상이 증가하고 있다”며 “은행들도 자산 부실화를 막기 위해 거래기업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진 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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