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하락세 어디까지]1달러〓1050원도 불안하다

  • 입력 2004년 11월 21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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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달러화 약세’ 용인을 시사하면서 세계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가치가 급락했다.

이에 따라 국내 외환시장에서도 원-달러 환율 하락세가 좀 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집권 2기에 ‘강한 달러’ 정책을 펴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엔-달러 환율이 역사적 저점 수준인 100엔 선에 근접하고 있어 미국과 일본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내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주 나흘 동안 40원 가까이 폭락하면서 1065원 선까지 떨어졌다가 막판 소폭 반등하면서 장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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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한 달러 약세 발언들=부시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된 뒤 떨어지기 시작한 달러화 가치는 그린스펀 의장의 ‘달러화 약세’ 용인’ 발언이 나온 19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장중 한때 102엔대까지 떨어져 4년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19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된 선진공업국(G20)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커 앞으로 세계 금융시장에서 달러 매각과 그에 따른 달러화 가치 하락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존 스노 미 재무장관도 같은 회의에서 “‘강한 달러’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면서도 “환율을 결정하는 곳은 시장”이라고 말해 달러화 가치가 떨어져도 미국 정부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일본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현 추세라면 이달 안에 1995년 이후 처음으로 달러당 100엔 선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달러화 약세는 시장에 달러 매물이 늘어났기 때문이지만 쌍둥이적자(경상수지 및 재정 적자)로 골머리를 앓아온 미국 정부가 여러 경로를 통해 부추기고 있다는 게 일본과 유럽연합(EU)의 시각이다.

▽헷갈리는 미국 환율정책=달러화 약세의 불가피성을 밝힌 그린스펀 의장과 달리 부시 미국 대통령은 ‘강한 달러’를 천명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강한 달러’ 정책을 통한 재정적자 해소를 약속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부시 대통령의 집권 1기 때에도 스노 재무장관은 대외적으로 ‘강한 달러를 선호한다’고 밝히면서 달러 약세를 용인했다”며 “부시 대통령의 이번 선언도 각국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 ‘립서비스’일 뿐 그린스펀 의장의 발언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1985년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등 ‘쌍둥이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플라자합의를 통해 환율을 조정했던 것처럼 급격한 조치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일본과 독일이 경제호황을 누리고 있어 달러 약세를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경제여건이 달라 그럴 가능성은 많지 않다는 게 외환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신 연구위원은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위안화 절상 압력을 가하면서도 경상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중국 등 아시아 각국에 통상압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달러당 1050원 선도 안심 못해’=국내 외환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은 1050원 선이 바닥이라는 데 대해 대체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그린스펀 의장의 발언을 계기로 1050원 밑으로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외환은행 외환운용팀 구길모 과장은 “시장에서 보는 환율의 적정 균형점은 1050원이지만 그린스펀 의장의 발언으로 이 선을 깨고 밑으로 내려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달러화 약세’ 정책 의지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외환전문가들은 “시장에서는 너무 급하게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이제 바닥까지 온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정서도 있다”며 “일시적으로 1050원 선이 깨지더라도 자율 반등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외환당국의 개입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한화증권 홍춘욱 투자전략팀장은 “아시아 외환위기 때에도 달러당 100엔 선은 깨지지 않았다”며 “엔-달러 환율이 100엔 선에 다가갈수록 일본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의지가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18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필요할 경우 행동할 것”이라며 외환시장 개입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언급했다.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차지완기자 cha@donga.com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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