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방어 연기금 활용]‘정부입김’ 새 위협요소 될수도

  • 입력 2004년 11월 16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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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최근 외국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비해 연기금을 ‘기업의 경영권 방어용’으로 투입하는 방안을 제시한 데 대해 경제전문가들과 재계는 관심과 함께 우려감을 표시하고 있다.

연기금이 대기업 지분을 갖게 되면 외국 자본의 경영권 위협을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연기금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정부의 ‘입김’이 새롭게 경영권 위협요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홍익대 김종석(金鍾奭·경제학) 교수는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에 필요하다며 출자총액제한제도나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을 풀어달라고 요구할 때는 ‘실제 외국 자본의 경영권 위협은 크지 않다’고 주장하던 정부가 갑자기 연기금까지 동원해 경영권을 지켜주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연기금을 동원해야 할 정도로 경영권 위협이 있다면 먼저 기업들의 요구사항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면서 “연기금을 통해 정부의 개입수준을 높이기보다 금융계열사 의결권 등의 규제를 완화하는 등 정부의 간섭을 줄이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李承哲) 경제조사실장도 “현재의 연기금 지배구조와 규모로 볼 때 기업지분을 갖게 되면 기존 경영진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연기금을 투자하기 전에 연기금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바꾸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연기금의 과도한 경영권 간섭을 배제하고 연기금 결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보완책이 먼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도입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나경제연구소 배현기(裵顯起) 금융팀장은 “적대적 M&A 시도 등으로 소유권이나 의결권 변동이 있을 때에는 연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되 일상적 경영 의사결정에는 일체 간여할 수 없도록 하는 ‘섀도 보팅’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으며 직접투자 대신 간접투자를 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피데스투자증권 김한진(金漢進) 전무는 “한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크지 않기 때문에 대주주였던 연기금이 보유했던 주식을 팔 때 경제 전체가 휘청거리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기업투자를 허용하더라도 주식시장의 성숙도에 따라 주식투자 비중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당수 전문가들과 기업관계자들은 앞으로 연기금의 주식 투자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 올 수도 있지만 정부의 정책방향이 기업에 신뢰를 주지 못하는 현 시점에서는 득보다 실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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