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2004]코오롱 구미공장 파업 50일째

  • 입력 2004년 8월 11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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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 구미공장 노조원들이 정문을 봉쇄한 가운데 제품을 출고하기 위해 후문을 통과하는 화물차를 통제하고 있다. 코오롱 노조는 11일로 파업 50일째를 맞았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코오롱 구미공장 노조원들이 정문을 봉쇄한 가운데 제품을 출고하기 위해 후문을 통과하는 화물차를 통제하고 있다. 코오롱 노조는 11일로 파업 50일째를 맞았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노조에 밀려 구조조정을 미루다 결국 문제가 한꺼번에 폭발한거죠. 저도 오랜 파업 끝에 법정관리 중인 오리온전기 근로자 출신입니다. 노조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회사에서도 사양산업을 마냥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11일 오전 경북 구미역에서 코오롱 구미공장으로 가는 10분 동안 택시운전사는 연방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타결을 봐야죠. 지역경제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고….” 구미공장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쪽문을 통과하려 하자 노조원이 “어디서 왔느냐”며 경계심을 나타냈다. 정문 앞 공장 본관 주변에는 천막이 여기저기 설치돼 있었다. “전체 노조원 1400명 중 절반은 휴가를 떠났고 나머지 인원이 천막에서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구미공장 경영지원실 오인봉 과장의 설명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피해=이날로 파업 50일째를 맞은 코오롱 구미공장은 1969년 구미공단 조성 때 가장 먼저 세워진 공장 중 하나다.

폴리에스테르 원사와 스판덱스, 필름, 타이어코드 등을 생산하는 이 공장의 연간 매출액은 회사 전체 매출의 절반에 가까운 6000억원.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피해액도 50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또 100여개 중소 협력업체들의 생산 중단과 도산이 이어지고 있다.

코오롱 구미공장에서 폴리에스테르 원사를 받아 가공하는 섬유업체 이모 사장(56)은 “재고 원료로 공장을 일부 돌리고 있지만 설비의 60%가 멈춰서 있다”며 “이달 말까지 파업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노조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회사측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고수하면서 당장 생활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밤잠을 설치는 직원이 적지 않다.

▽물러서지 않는 노사=코오롱 구미공장 파업 쟁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를 겪었다.

당초 구미공장의 파업은 ‘돌릴수록 적자를 내는’ 한계설비를 정리하겠다는 회사 방침으로 6월 23일 시작됐다.

한계사업 정리에 대해서는 노조측도 수긍을 했다. 다만 회사측이 신규투자 계획을 먼저 밝히고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해야 한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이후 양측의 협상은 회사측이 신규투자계획 등 협상안을 내놓으면서 접점을 찾아가는 듯했으나 지난달 20일 이후 협상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노조는 파업기간 임금지급 및 징계 철회 등을 요구하며 회사측에 새로운 협상안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측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고수하는 등 법과 원칙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회사측은 나아가 6일 노조위원장 등 노조원 11명에 대해 집단 해고조치를 취했다.

▽물러설 수 없는 속사정=한광희(韓光熙) 코오롱 사장은 이날 “무노동 무임금 등 기본 원칙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윤정민 경영지원실장은 “잘못된 관행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파업기간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면 노조에 앞으로도 ‘버티면 된다’는 믿음을 심어줘 해마다 같은 현상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회사측은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장철광 노조위원장은 “회사측이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대화를 회피함으로써 노조를 고사(枯死)시키려고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주엽 부위원장은 “회사측의 피해액이 500억원이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 10%만 성의를 보였어도 사태가 이처럼 장기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오롱 구미공장 파업사태는 중국의 도전 속에 한계사업을 껴안고 있는 다른 제조업체의 고민이기도 하다.

한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1일 의견서를 통해 “코오롱 노사는 임금 인상 등 대부분의 쟁점사항에 대해 사실상 합의했음에도 노조가 민형사상 면책과 파업기간 중 임금 지급 등을 요구하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또 “회사는 노조의 장기파업으로 인해 생존 자체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며 “불법파업 주동자 등에 대한 조속한 처벌 등 엄중한 법 집행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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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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