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관리실태]관리기관이 변칙회계 ‘보너스 잔치’

  • 입력 2004년 5월 27일 18시 43분


코멘트
정부투자기관의 공적자금 관리 허술과 공적자금을 받은 금융사들의 도덕적 해이로 1조원 이상의 국고가 낭비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복동 감사원 재정금융감사국장(오른쪽)이 27일 감사원 대회의실에서 공적자금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연합
정부투자기관의 공적자금 관리 허술과 공적자금을 받은 금융사들의 도덕적 해이로 1조원 이상의 국고가 낭비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복동 감사원 재정금융감사국장(오른쪽)이 27일 감사원 대회의실에서 공적자금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연합
감사원이 27일 발표한 ‘공적자금 관리실태’ 감사결과는 외환위기 과정에서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했음을 인정한다 해도 정부의 공적자금 관리와 운용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감사원 재정금융감사국 박의명(朴義明) 3과장은 이와 관련해 “담당 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와 예금보험공사가 제대로 관리만 했어도 최소 8000억원 이상의 국고 낭비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KAMCO는 공적자금을 우선적으로 회수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도 부실채권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공적자금으로 회수해야 할 3558억원을 회사 수입으로 처리했다.

KAMCO는 2000년 10월 부실채권정리기금이 갖고 있던 부실채권 5조1723억원어치를 863억원(채권원금의 1.6%)에 사들인 뒤 매입 부실채권 가운데 3973억원어치를 시장에 내다팔아 3134억원의 이익을 남겼다. 그러나 그 차익금을 국고에 넣지 않은 채 고스란히 회사 이익으로 처리했다.

또 KAMCO는 부실채권정리기금과 공동으로 지분을 갖고 있는 자산유동화회사의 이익배당금을 부실채권정리기금에는 당초 약정보다 적게 배분한 반면 회사 몫(KAMCO 일반회계)에는 더 얹어주는 방식으로 396억원의 공적자금을 가져갔다. 이는 부실채권정리기금의 이익으로 잡혀 자동적으로 공적자금 회수분으로 처리됐어야 할 금액이다.

감사원측은 “KAMCO가 이런 편법적인 회계처리로 벌어들인 수익을 재원으로 임원 연봉의 5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등 도덕적인 해이가 심각했다”고 지적했다.

▽약정 체결 미숙으로 1000억원대 공적자금 손실=예보와 KAMCO는 부실 금융회사에 공적자금을 지원하면서 사후정산 약정을 제대로 맺지 않는 미숙한 업무처리로 1008억원의 공적자금을 날렸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예보는 부실 보험사를 인수한 금호생명 등 4개 보험사에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영업이익의 사후정산 절차를 제대로 약정하지 않는 바람에 193억원을 회수하는 데 실패했다. 또 우리종금에 공적자금 2조6732억원을 지원한 뒤 사후 관리 업무소홀로 230억원의 공적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또 KAMCO는 서울보증보험에서 부실채권 3조461억원(매입액 9542억원)어치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채권이자를 돌려받는 약정을 빠뜨려 이자수입 585억원을 손해 봤다.

▽헐값 채권 매각으로 371억원 손해=미국투자회사들이 KAMCO의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들여 막대한 차익을 거둔 사례도 포착됐다.

미 투자사인 M사는 KAMCO의 부실채권 99억원어치를 단돈 100원에 사들여 89억원에 팔았다. 대한주택보증㈜이 지급 보증한 채권인데도 KAMCO가 담보가 딸리지 않은 무담보채권으로 잘못 분류해 헐값에 파는 바람에 M사만 ‘돈방석’에 앉게 됐다.

또 다른 미 투자사인 B사와 J사는 KAMCO에서 부실채권 559억원어치를 129억원에 사들였으나 감사결과 재무자문회사의 평가금액보다 낮은 가격에 응찰했는데도 KAMCO가 그대로 낙찰해 줘 66억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밝혀졌다.

▽부실기업 빚은 많이 깎아 주고 공적자금은 과다 지원=부실 금융사 파산재단에서 부실기업의 빚을 너무 많이 깎아주는 바람에 입은 손실 등도 1194억원이나 됐다.

대한종금 파산재단은 부실기업인 S건설과 S산업개발을 살리기 위해 부채비율을 300%이하로 낮춰주는 과정에서 빚을 3922억원만 깎아주면 되는데도 이보다 1074억원 더 많은 4996억원을 줄여 줬다.

나라종금 파산재단도 계열기업인 B사에 대해 대출채권 3502억원 가운데 화의(和議) 조건을 완화시켜 줘 결국 다른 채권금융기관에 비해 918억원을 덜 회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보는 태평양생명 등 3개 부실보험사와 한일상호저축은행의 자산과 부채를 실사하는 과정에서 담보채권을 무담보채권으로 잘못 분류해 공적자금 92억원을 더 지원했다.

공적자금 특감을 실무 지휘한 하복동(河福東) 감사원 재정금융감사국장은 “KAMCO 등 담당기관 직원들의 개별적인 잘못도 있고, 몰라서 외국계 자본에 속아 넘어간 부분도 있다”면서 “이제 우리 금융회사도 선진 금융상품 기법을 배우고 국제금융 전문가를 키워 우리도 외국에서 금융장사를 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