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위-금감원 통합]‘半官半民 금감원’ 5년만에 대수술

  • 입력 2004년 5월 24일 18시 37분


코멘트
청와대가 감사원의 의견을 수렴해 사실상 확정한 금융감독기구 개편안의 핵심은 ‘금융감독원의 정부 기구화’다.

정부가 1999년 1월 금융감독을 위해 금감원을 ‘민간 조직’으로 출범시킨 지 5년여 만에 정부 조직으로 개편하기로 나선 것은 지난해 11월 발생한 LG카드 사태가 직접적인 계기다. 더 이상 금감원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반관반민(半官半民) 조직으로 둘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개편 대상인 금감원 직원들은 정부의 개편 방안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상당기간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개편 배경=현행 금융감독 체계에 대한 비판은 동방금고 부정대출 사건 등으로 금융감독 기능에 대한 논란이 커졌던 2000년 12월경부터 본격 제기됐다. 당시 전윤철(田允喆) 기획예산처 장관의 주도 하에 금융감독 체계 혁신 4개 방안이 마련됐으나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후 이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으나 작년 ‘신용카드 대란(大亂)’이 발생하면서 다시 부각됐다. 특히 작년 11월 전윤철 전 장관은 감사원장에 임명되면서 취임 일성으로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위한 정책 감사를 거론했다.

이후 ‘카드 감사’를 진행한 감사원은 “금감원이 부실감독 책임이 있는데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금감원의 현행 체계를 꾸준히 비판했다. 또 “금감원의 업무 성격을 감안하면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으로 조직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감사원이 이번에 청와대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3가지 안(案)이 모두 금감원의 정부조직화를 담은 것은 이 같은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개편 내용 분석 및 장단점=청와대가 마련한 방안은 재정경제부가 강력하게 주장한 ‘금감원의 정부 조직화’를 받아들였다. 다만 현재 재경부 금융정책국이 쥐고 있는 금융관련 법률 제·개정권과 관련해 재경부는 통합 감독기구를 재경부 산하 금융청으로 편입하는 방안을 주장했고 금감위에서는 금융부를 신설하는 방안을 각각 주장해 왔다.

재경부 금융정책국 기능을 새로 출범하는 금감위-금감원 통합 조직에 넘길지, 아니면 현재처럼 재경부에서 금융관련 법률 제·개정권을 계속 가질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금감위 당국자는 “재경부는 시장과 동떨어져 있어 그동안 정책 대응에 시의성이 떨어지는 등 문제가 많았다”며 “통합 감독기구가 법률 제·개정권을 행사해야 개편안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점을 위에서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안이 17대 국회에서 확정될 경우 정책 대응 지연이나 업무 중복, 책임소재 불분명 등 그동안 자주 비판받아 온 문제는 크게 해소될 전망이다.

하지만 독립성과 중립성이 요구되는 금감원이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들어가면서 금융감독 기능이 자칫 관치금융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각 당사자 반응=재경부는 금감위와 금감원을 통합해 정부조직으로 만드는 방안에 대해서는 “바람직하다”고 보면서도 재경부의 금융정책 수립 기능까지 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금감위는 기본적으로 이번 개편안에 찬성하고 있다. 다만 최근 들어 이정재(李晶載) 금감위원장 등 고위 간부들의 거취가 어떻게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면 금감원은 통합 감독기구가 출범하면 금융감독이 정책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며 ‘총력 투쟁’을 다짐하고 있다. 최근 전 직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금감원은 파업은 물론 민주노동당과의 연대 투쟁도 불사할 방침이다.

금융계는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계 관계자는 “정책 당국과 금융업계가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어 시장의 분위기를 즉각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다만 관치금융이 강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금융감독기구 변천사▼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으로 3분화돼 있는 지금의 금융 감독 체계는 1998년에 만들어졌다.

이전에는 금융 감독 기능은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신용금고 담당) 등 4개의 금융권별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 가운데 은행감독원은 한국은행에 속해 있었고 나머지 3개 감독기구는 재무부 또는 94년 12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합쳐 설립된 재정경제원 산하에서 감독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다 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효율적인 금융 감독을 위해 감독 기능을 통폐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법령 제정 및 개정권, 각종 인허가권, 금융 감독 등 금융관련 권한이 모두 재경원에 집중돼 있어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결국 98년 4월 금융 감독만을 전담하는 금감위가 국무총리 산하 독립 정부기관으로 탄생했다. 이어 99년 1월에는 은감원 증감원 보감원 신용관리기금 등 4개의 감독기구를 통합해 민간 조직인 금감원이 설립돼 금감위 산하에 들어갔다.

즉 △금융정책 입안 및 금융관련 법령의 제정 및 개정권은 재경부 금융정책국 △감독정책 수립 및 각종 인허가권은 금감위 △감독 및 검사권은 금감원에 따로따로 주어진 것이다.

금감위와 금감원 설립 당시부터 재경부를 포함해 세 조직의 역할이 쪼개져 있는 점 때문에 효율성 논란이 적지 않았다. 특히 공식적으로 민간조직인 금감원은 ‘웬만한 정부기관보다 권한이 세면서 봉급은 많고 노조도 있는 기형 조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98년과 99년에는 금융구조조정이 워낙 숨 가쁘게 진행되면서 금융 감독 개편 논의가 물밑에 잠복해 있었다.

그러다 금융구조조정이 일단락된 2000년부터 개편론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2000년 12월에는 기획예산처가 금융 감독조직 혁신방안을 내놓기도 했으나 별다른 결론에는 이르지 못했다.

당시 금융 감독 개편 논의를 주도했던 전윤철(田允喆) 기획예산처 장관이 2003년 11월 감사원장을 맡으면서 개편 작업은 급물살을 탔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금융 감독체계 개편 논의 일지▼

△1995년 2월=재정경제원, 은행 증권 보험 비은행 감독기관을 통합하여 공적 기구인 금융감독원을 설립

△1997년 12월=금융개혁위원회, 현재의 금감위와 금감원을 설립하는 금융개혁방안 제출해 수정 후 법률안

△1998년 4월=국무총리 산하 독립기관인 금융감독위원회 설립

△1999년 1월=은행 증권 보험감독원 및 신용관리기금 통합해 민간 조직인 금융감독원 설립

△2000년 12월=기획예산처가 금융 감독조직 혁신방안 4가지 제시했으나 폐기

△2004년 1월=감사원, 카드부실관련 금감위 금감원 감사 및 금융 감독체계 개편안 마련 착수

△2004년 5월=청와대, 금감원을 정부기구로 전환한 후 금감위와 통합해 별도 정부 조직으로 개편하는 방안 잠정결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