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돈빌릴 곳 없다…신용조회 기록만 있어도 ‘대출 不可’

  • 입력 2004년 3월 28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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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댈 곳은 사채(私債) 시장밖에 없네요.”

서울 성북구에서 통닭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34·여)는 최근 서울 강남의 한 대부업체를 찾은 후 맥이 풀린 목소리로 주저앉았다.김씨는 올초 조류독감으로 매상이 크게 떨어지면서 심각한 운영자금 압박을 겪자 은행과 신용카드사, 보험회사를 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며 대출을 신청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지난해 현금서비스를 두 차례 연체한 기록이 있었던 데다 은행의 기존 대출금도 일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대부업체를 찾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김씨의 신용정보를 조회한 후 대출을 거절했다.

이처럼 각 금융회사들이 서민대출을 억제하면서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이 돈 구하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결국 고금리의 사채 시장으로 내몰린 후 가정파탄에 이르기도 한다.

▽돈 빌릴 곳이 없다=28일 금융감독원 및 금융계에 따르면 서민들이 찾는 상호저축은행 대부분은 최근 들어 300만원 이하 소액 신용대출 취급을 중단했다.

저축은행의 소액 신용대출 잔액은 2002년 말 2조8200억원에서 작년 6월 말 2조5600억원, 작년 말 2조3800억원 등으로 계속 줄고 있다.

서민들이 급전용으로 사용하는 현금서비스의 한도도 전업계 카드사의 경우 2002년 말의 101조원에서 작년 3월 말 77조원, 6월 말 63조원, 9월 말 59조원 등으로 감소했다.

보험업계도 마찬가지다. 삼성 대한 교보생명 등 생명보험업계 ‘빅3’의 지난달 말 신용대출은 모두 12조5365억원으로 작년 말의 12조7620억원보다 2000억원 이상 줄었다.

서민들이 사채시장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르는 대부업체도 다를 바 없다. 작년 중반까지 40∼50%에 달했던 대출 승인율이 올해 들어 10∼20%까지 떨어졌다.

▽깐깐해진 대출 승인=서민들에 대한 대출심사도 보다 엄격해지고 있다. 대한생명은 15일부터 신용대출 신청 고객이 카드사에서 받은 현금서비스 금액이 100만원을 넘거나 최근 6개월 이내에 대부업체에서 대출 가능 금액을 조회만 했어도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대부업체 관계자도 “요즘은 고객이 실제 대출을 받지 않았더라도 신용정보 조회 기록이 많으면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며 “대부분의 업체들이 신규대출을 하지 않고 기존 대출금에 대한 사후관리만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서민대출 시장이 악화되면서 서민 금융회사들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문을 닫고 있다.

저축은행은 1997년 231개에서 작년에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114개로 격감했고, 신용협동조합은 같은 기간 1666개에서 1086개로 축소됐다.

대부업체도 작년 6월까지 699개에 불과했던 등록 취소업체가 12월 2377개, 올해 1월 2707개, 2월 3058개로 급증했다. 2월 중 신규 등록업체는 304개에 불과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작년까지 하루 평균 10여건이었던 고금리 피해 신고가 최근에는 하루 15∼20건으로 급증했다”며 “문을 닫은 대부업체가 사채업자로 전환하면서 고금리 피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우려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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