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할수있다”식 규정이 재량권 남용 부추켜

  • 입력 2004년 3월 18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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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규제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람에 의한 규제다.

공무원들의 재량권은 종종 제도 자체보다도 강력한 규제의 형태로 나타난다. 법적인 규제는 분명히 완화됐는데 규제가 여전히 심하다고 느끼는 이유도 이것이다.

회사를 설립할 때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뀐 사례만 봐도 그렇다. 신고만 하면 되는데 담당 공무원이 “서류에 하자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신고서 접수를 거부한다. 이런 일이 몇 번 되풀이되면 사람이 지치게 된다. 혹은 일을 제때 처리하기 위해서 부정한 방법을 쓰거나 접대를 해야겠다는 식으로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재량권 남용을 가능케 하는 모호한 규정과 표현이 문제다. 규제의 상당수가 ‘∼할 수 있다’고 표현돼 있다. 규제권자가 “꼭 된다고 한 적은 없다”며 말장난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부분은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가능하면 예외를 두지 않는 규정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명시하는 ‘포지티브 시스템’에서 자율적으로 풀어놓되 규제할 부분만 ‘∼는 못 한다’는 식으로 지적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외자(外資) 유치를 장려하기 위해 외국인의 국내 사업 활동과 투자에 대해서는 규제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계속됐다. 국내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 한 곳에서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원스톱 서비스(one-stop service)가 대표적이다. 외국인이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서 보내주면 일처리가 일괄적으로 진행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민원인의 입장에서는 여러 공무원을 만날 필요가 없다. 인적 규제에 걸리는 경우 자체가 줄어드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국내 창업자들에게는 아직까지 이런 혜택이 별로 없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이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주목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도지사가 좋은 정책을 실시해도 군수의 이해관계에 따라 허가를 거부하는 사례도 많다.

규제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행 규제하에서 일괄 창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수희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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