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사기 예방법]도로없는 주택지 판뒤 "언제 물어봤소?"

  • 입력 2004년 1월 29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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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시의 자연녹지 3000여평을 200평 단위로 쪼개서 평당 62만원에 판다. 놓치면 후회한다. 곧 보상금을 타게 될 판교지구 주민들이 몰려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순 회사원 이모씨(34)는 젊은 여성한테서 토지에 투자하라는 권유 전화를 받았다. 그 여성은 “해당 필지 바로 앞으로 폭 20m의 6차로가 뚫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근에 50만평짜리 생태공원이 조성되고 900가구 규모의 아파트단지 입주가 곧 시작된다”는 미끼도 던졌다.

며칠 뒤 다시 전화가 왔다.

“그 땅은 다 팔렸다. 지금 다른 물건을 팔고 있는데, 신청이 쇄도해 청약금을 200만원씩 받고 있다. 추첨에서 떨어지면 돌려주겠다. 또다시 아까운 기회를 놓치지 마라.”

전화는 그 뒤 10여회 더 이어졌다. 나중에 용인시청에 확인해 보니 그 여성이 말한 개발 계획은 대부분 거짓으로 드러났다. 인근 중개업소에 물어 보니 문제의 땅값은 40만원에 불과했다.

요즘 이런 전화를 받았다는 사람이 많다.

이른바 ‘기획부동산’으로 불리는 전문토지사기단이다. 사기단에 고용된 텔레마케터들이 전화번호부나 불법 유통되는 개인신상정보를 이용해 무작위로 거는 전화다.

▽피해 유형=첫째, 노골적인 사기.

‘A땅을 판다’고 하면서 ‘한번 보고 싶다’고 하면 엉뚱한 B땅을 보여준다.

‘2∼3년이면 규제가 풀릴 것’이라고 하면서 녹지지역 등 개발이 어려운 땅에 대한 투자를 권유하기도 한다.

택지개발예정지구 도면을 변형해 지구 안의 토지를 ‘지구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속여 팔기도 한다. 일단 구입하면 시세보다 낮은 수용가격에 처분할 수밖에 없다.

잔금을 치르지 못해 매매계약이 해지된 토지를 실제 주인인 양 팔아먹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1월 강원 평창군의 펜션 부지용 토지거래에서 나타난 사기 유형이다.

둘째, 물건 자체의 흠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파는 형태. ‘곧 도로가 난다’ ‘인근에서 온천이 개발될 예정이다’는 개발계획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검토 단계의 개발계획을 마치 확정된 것처럼 부풀린 경우다. 개발계획은 변경되거나 예산 부족으로 지연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선거철에 만들어진 개발계획은 더욱 그렇다. 기획부동산은 이런 개발재료를 앞세워 토지를 매입가의 2∼3배에 떠넘기고 사라진다. 매수자가 수익을 내고 팔려면 5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경래 ㈜OK시골 사장은 “지적법상 맹지(盲地·접근로가 없는 땅)이거나 마실 수 있는 지하수를 구할 수 없는 곳의 전원주택지를 파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나중에 항의하면 ‘물어보지 않아서 설명 안 했다’고 대꾸하기 일쑤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허가 없이 증여 방식으로 소유권을 넘겨받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투자자는 토지가액의 50%를 증여세로 내야 한다.

▽피해 예방법=강경래 한국개발컨설팅 사장은 “해당 지방자치단체(건축과 지적과 민원실)나 해당 필지 인근 중개업소에 전화 몇 통만 해도 노골적인 사기는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닳고 닳은 사기꾼들은 “지금 군청에 전화하면 이러저러한 얘기를 할 텐데, 그건 실무자들이 아직 잘 몰라서 그러는 거다”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 형태의 사기는 웬만해서는 대처하기 어렵다.

나창근 부동산퍼스트 사장은 △토지대장 지적도 토지이용계획확인원을 해석하는 방법을 숙지하고 △점검사항을 꼼꼼히 적은 후 현장을 5번 이상 둘러보고 △행정관청과 인근 중개업소에 확인해야 안전하다고 말했다.

유혹에 약한 성격이라면 아예 투자 권유를 뿌리치는 게 상책. 사기 피해자들은 “전화를 들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끌려 들어가고 사무실을 방문하면 위압감이 들어 계약을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 털어놓는다.

김경래 사장은 “땅은 속성상 환금성이 떨어지며 투자위험도 크다”며 “해당 물건을 철저히 파악하고 개발재료를 확인한 후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발호재는 보통 서너 단계에 걸쳐 부동산 시세에 반영되는 경향이 있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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