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야채 가게 ‘자연의 모든 것’ 총각사장 이영석씨

  • 입력 2003년 10월 12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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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경영방식으로 ‘야채장수’의 역사를 새로 쓴 이영석(왼쪽에서 두번째)씨가 자신이 경영하는 야채 가게 ‘자연의 모든 것’ 직원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박주일기자
남다른 경영방식으로 ‘야채장수’의 역사를 새로 쓴 이영석(왼쪽에서 두번째)씨가 자신이 경영하는 야채 가게 ‘자연의 모든 것’ 직원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박주일기자
“딱 30분밖에 시간 못 내요. 진짜 인터뷰할 틈이 없거든요. 손님들이 계속 오니까….”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뒤편 야채가게 ‘자연의 모든 것’의 사장 이영석(李榮錫·35)씨. 그는 몰려드는 아줌마들을 상대로 저녁 ‘떨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10여명이나 되는 직원들에게 잠깐 일을 맡겨도 좋으련만 “각자 역할이 따로 있다”며 일에서 손을 놓지 않으려 한다.

‘총각네 야채 가게’로도 불리는 이 18평짜리 가게는 독특한 마케팅 기법과 강남 주부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은 품질로 이미 유명세를 탔다.

매일 재고율 0%, 한국에서 평당 최고 수준으로 알려진 매출액, 외국 연수를 시키는 직원 교육 방식, 가게 앞에서 펼치는 각종 이벤트 등은 이미 ‘신화’가 됐다. 98년 첫 점포를 연 뒤 분점도 8개나 생겼다.

“일을 배우겠다”며 전국의 총각이 몰려들고 아줌마 고객들은 경기 고양시 일산이나 성남시 분당 등에서까지 찾아온다. 하루에 물건을 사가는 손님은 1000여명.

“우리 직원들은 각각 200명 이상의 고객 이름을 외우고 있어요. 저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했어요. 그래도 즐겁고 신나게 일하다 보면 외워져요. 가락시장에서 물건을 사오려고 매일 오전 3시에 일어나는 것도 거뜬히 된다니까요.”

“장사만큼 정직한 게 없다”는 것이 이씨의 지론이다. 대학 졸업 후 회사 생활에 실망하고 있던 93년, 우연히 시도해 본 오징어 장사로 30분 만에 4만원을 벌어들이면서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즉시 300만원의 빚으로 트럭을 사 야채 행상에 나섰다. 야채와 과일은 ‘경기에 덜 민감하고 소비가 꾸준하다’는 판단으로 선택한 아이템이었다.

“가게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면 장사 못해요. 치킨 장사를 한다면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며 치킨 냄새를 풍겨야죠. 바나나 팔려고 원숭이를 사다 트럭 위에 앉힌 적도 있어요. 옛날부터 손님 끄는 마케팅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칼잡이’라는 이씨의 별명도 자주 회자된다. 좋은 품질을 고르겠다며 새벽마다 칼을 들고 가락시장에 나가 과일 박스를 찢다 얻은 별명이다. 당시 “미쳤느냐”며 이씨에게 주먹을 휘두르던 상인들도 이젠 “맛 좀 봐 달라”며 먼저 박스를 들이밀 정도가 됐다고 한다.

이씨는 요즘 각종 기업체에 강의를 나간다. 경영 기법과 철학을 알려 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가게를 견학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백만장자 야채장수’, ‘사장’, ‘강사’라는 타이틀 외에 ‘저자’라는 명함까지 보탰다. 이씨의 마케팅에 깊은 인상을 받은 국민대 경영학과 김영한 교수의 제의로 ‘총각네 야채 가게’라는 책을 낸 것.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라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돈을 좀 더 벌면 테마파크 같은 가게를 만들 거예요. 과일 매장 앞에는 오두막이 있고 생선 매장에는 호수가 있어서 회를 먹기도 하는 공간이요. 주말이면 아이들이 농장 체험도 할 수 있는 테마 가게, 멋지지 않나요?”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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