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油價쇼크]기름값 年1달러 오르면 생산 1%감소

  • 입력 2003년 9월 25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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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제전문 통신사인 블룸버그 한국지사의 한 직원이 25일 금융지표 현황판 앞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한국 등 아시아 각국의 주가와 환율을 보고하고 있다. -전영한기자
미국의 경제전문 통신사인 블룸버그 한국지사의 한 직원이 25일 금융지표 현황판 앞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한국 등 아시아 각국의 주가와 환율을 보고하고 있다. -전영한기자
25일 국내외 주식시장을 강타한 ‘유가(油價) 쇼크’는 태풍과 원화 환율 급락으로 가뜩이나 취약해진 한국 경제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특히 유가 상승은 환율 급락(원화가치 급등)에 따른 일부 반사이익까지 한꺼번에 상쇄하는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사실상 경기 회복의 ‘비상구’마저 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에 따라 이미 내수 및 투자침체 장기화로 허덕이고 있는 우리 경제는 거의 모든 대외변수까지 나빠지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면서 경제성장률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번엔 ‘유가 쇼크’=흔히 한국 경제를 좌우하는 3대 변수로 환율, 유가, 금리가 꼽힌다. 이 가운데 금리와 환율은 산업별로 다른 영향을 미친다. 22일 원-달러 환율이 급락했을 때 수입의존도가 큰 정유업체와 항공사들이 ‘표정 관리’에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유가는 전 산업에 무차별적인 타격을 입힌다. LG경제연구원 김기승(金基承) 연구위원은 “한국처럼 원유를 100% 수입하는 나라는 유가 상승이 곧 모든 산업의 생산 위축으로 이어진다”며 “이는 최근 환율 하락으로 원가 부담을 던 일부 업종들의 경영개선 효과까지 악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실제 유가가 연간 1달러 오르면 산업 생산은 1%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물가 상승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 유가 상승은 곧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만 현재 한국 경제는 물가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문제는 그나마 얼어붙은 소비심리가 소폭의 물가 상승으로도 더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출 감소도 유가 상승에 따른 악성(惡性) 시나리오에 포함된다. 유가가 오르면 선진국 경제의 구매력이 약화돼 수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세대 이두원(李斗遠·경제학) 교수는 “유가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변수”라며 “선진국 경제가 위축되면 그나마 수출로 버텨왔던 한국 경제는 더 큰 타격을 입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달러화 약세가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도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를 통해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 세계 전체로는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성장률 더 떨어지나=한국은행에 따르면 유가가 연간 1달러 오르면 한국 경제성장률은 0.06%포인트 떨어진다. 또 경상수지 흑자는 10억달러 줄어들고 물가는 0.1%포인트 상승한다.

한은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의 5%대에서 3.1%로 낮춰 잡았을 때 국제 유가는 배럴당 27달러(북해산 브렌트유 기준)를 전제로 했다. 하지만 24일(현지시간) 브렌트유는 전날보다 0.90달러 오른 27.09달러에 거래됐다.

한은 관계자는 “유가 상승 기조가 단기에 그치지 않을 경우 올해 성장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은은 이미 태풍 피해와 환율 급락으로 올해 성장률이 3.1%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전망치 재수정 작업을 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도 기존 성장률 전망치를 3%로 추정했지만 최근 2.8%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7%에서 2.5%로, 삼성경제연구소는 3.0%에서 2.7%로 낮췄다. 여기에는 ‘유가 변동’이라는 변수는 고려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이번 유가 상승이 단기적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경제에 미칠 영향이 적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동철(曺東徹) 거시경제팀장은 “유가 상승이 지속된다면 성장률 전망 조정 등이 불가피하지만 아직까지 이를 경상수지나 구체적인 성장률 전망에 반영하기는 이르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각종 외부 악재(惡材)에 난타당한 데다 소비와 투자의 동반 위축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는 만큼 이번 유가 상승이 어떤 식으로든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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